'만화평론가'라는 명함은 아직 우리에게 낯설다. 기존 '문화권력'들이
정색을 하고 다루기엔 뭔가 꺼림칙한 구석이 남아있는 텍스트. 또 그런
이름으로 활동해온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인상비평 쯤의 성과밖에 이뤄내지
못한 게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90년대부터 이 텍스트의 주류문화 편입속도는 괄목할 만하다.
청소년 시절 본격적인 만화 세례를 받았던 80∼90년대 학번들은 이제
단순한 향유에 그치지 않고, 노골적으로 그 텍스트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만화평론가를 자처하기엔 쑥스럽다"는 오은하(31)씨가 '오은하의
만화토피아'(한겨레 간)를 냈다. 그가 뽑은 일본만화 50편에 대한 본격
리뷰다. 만화 좋아하는 이들이 흔히 그렇듯,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만화책에서 배웠다"고 자처한다. 만화 텍스트를 소재로 대학시절 여성학
과제발표를 하면서 만화를 소재로 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일하는
시간일수록 만화를 봐야만 하는 직업까지 가지게 됐으니 '행복한
독자'인 셈이다.
이 평론집은 그가 최고작으로 주저없이 꼽는 '슬램덩크'부터 '지뢰진'
'음양사' '무한의 주인' 같은 매니아 취향 작품까지, 자기 체험을 생생하게
녹여낸 글쓰기다. 부록으로 98년 일본 만화연감에 실린 '일본만화 베스트
100'과 '도박묵시록 카이지' 작가 후쿠모토 노부유키 인터뷰를 붙였다.
문학과 달리 만화는 작가와 평론가 사이가 "영원한 평행선"이라고 그는
말한다. 기본적으로 '글'이라는 뿌리를 양쪽이 공유하는 문학과 달리,
만화는 '그림'과 '글쓰기'라는 근본적 차이를 지닐 뿐더러, 만화평론은
그 소비주체도 불분명했다. 90년대 들어 일반적인 문화이론으로 무장하고
기웃거렸던 많은 '사이비 만화평론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텍스트 자체에 대한 문화적 접근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장르적 고유성을 밝히는 이론 정립은 만화평론에 숙제로 남아있다.
오은하는 "다른 문화 장르가 서구 문화이론 차용이나 한국화 수준에서
평론작업을 하고있는 데 반해, 만화는 우리 스스로 정립하기 시작한
텍스트"라고 말한다. "아직 인상비평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선구적 작업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글을 씁니다."
만화평론가라는 이름이 곧 낯설지 않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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