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준안 국회통과 ##

박정희 대통령은 정구영 의장에게 왜 이 시점에서 장기영 부총리를
해임할 수 없는지를 설명했다. 대통령은 군정 말기 쌀이 부족할 때
한국일보 사장이던 장기영을 일본으로 보내 미쓰이 그룹을 통해서 쌀을
연불조건으로 비밀리에 수입해온 일을 이야기하면서 "한일회담이
마무리되어 가는 이때에 장부총리 같이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의장은 "부총리 해임안은 국회에서 부결되도록
해보겠습니다만 의원들의 의사도 존중하셔서 적당한 시기에 교체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대답이 없었다. 1965년 3월25일
표결에서 여당의원들이 제출한 부총리 해임건의안은 가54, 부16,
기권65표로 부결되었다.

1965년7월29일 박대통령은 존슨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7월25일자 존슨의 친서에 대한 답장인 이 편지에서 그는 '월남사태에
대한 각하의 확고한 결의에 대해서 지지를 보낸다. 한국정부도 이미
사단규모의 전투병력을 월남에 증파할 계획을 추진중에 있으며 늦어도
내월중에는 국회의 승인을 얻게 될 것이다'고 했다.

8월4일 민중당은 중앙상무위원회를 열고 한일회담 비준에 반대하기
위해 소속 의원 전원이 오는 8일까지 탈당계를 소속 지구당에
제출하도록 결의했다. 정당법은 국회의원이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김재순 공화당 원내대변인은 '헌정질서를
외면하려는 자학적인 비극'이라고 논평했다. 국회비준특위의 민관식
위원장은 야당의 극한적인 결의를 전해듣고는 산회를 선포했다.
특위소속 김대중 의원은 한일국교정상화의 불가피성을 이해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당론 통일이 안되어 비준저지의 길은 막연하고…
의원직을 그만두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정말 못살겠다"면서 책상에
엎드려 소리내어 울었다.

박대통령은 공화당의 내부가 모처럼 단결하여 밀고 나가고 있는
사이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8월6일 그는 전북지방을 순시한
뒤 일찍 청와대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프로 레슬링 시합을 구경했다고
한다.

7일 국회국방위원회는 전투부대의 월남파병안에 대해서 찬성 12명
반대 2명으로 통과시켰다. 야당인 민중당의 김준연 조윤형 의원은 찬성,
공화당의 박종태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8일 심야까지 간 국회 한일조약비준특위 회의를 마치고 청와대를
찾아간 공화당 의원들에게 박대통령은 "왜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는가.
시간을 끌어주면 야당이 그냥 통과시켜 준답디까"라고 질책했다.

11일 공화당은 야당의원들을 체력으로 밀어붙인 다음 비준안을
특위에서 통과시켰다. 다음날 민중당은 55장의 의원직 사퇴서를 이효상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그들은 수리되지 않더라도 국회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윤보선 고문계열의 강경파에 박순천 대표 등
온건파가 끌려가고 있었다.

의원직 사퇴서를 내지 않은 강문봉 최희송 의원은 제명되었다.
8월13일과 14일 이효상 의장은 국회에서 민중당을 탈당한 윤보선,
김도연, 서민호, 정일형, 정성태, 김재광, 윤제술 등 일곱 의원의
의원직 상실을 선포했다. 야당의 극한투쟁은 대학생들의 비준반대
시위를 촉발시켰다. 12일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한 전국 도시로
학생시위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국회는 13일 공화당의원만으로 1개
전투사단의 월남파병안을 가 101, 부 1, 기권 2표로 틔과시켰다.
14일엔 한일협정비준안을 가110, 기권1표로 통과시켰다.

비준안 통과 하루 전 정일권 총리는 정구영 공화당 의장과 만났다.
정의장이 비준안을 통과시킨 다음 물러나겠다고 하니 정총리도
동조하더란 것이다(정구영 회고록에서 인용).

"저도 그만두었으면 합니다. 말이 국무총리지 내가 무슨
국무총리입니까. 이런 로봇 총리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총리는 중요 정책 결정에 내각이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내각의
바람벽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데 대하여 불만이 많았다. 특히 이후락
비서실장과 김형욱 정보부장을 비롯한 대통령 측근들의 밀실정치에
분노하고 있었다.

16일 정일권 총리와 정구영 공화당 의장은 내각과 당간부들의
일괄사표를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박대통령은 정의장에게 얼굴을
붉히면서 "아니, 선생님은 중요한 일을 처리하시고 난 뒤에는 반드시
이런 문제를 꺼내니 어째 이러십니까. 가져가십시오. 사표는
못받습니다"라고 난감해 했다.

두 개의 짐을 한꺼번에 벗어던진 박대통령은 격화되는 학생시위를
비웃듯이 16일 진해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이후락 실장은 이날 아침
대통령의 명을 받아 내각의 사표를 정일권 총리에게 돌려주고 난 다음
정구영의 집을 찾아왔다.

"각하께서 진해로 떠나시기 전에 이걸 선생님에게 갖다드리라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국무총리도 반려받으셨으니 선생님도 받으십시오."
"가져온 것을 거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받긴 받겠소만 다시
제출하겠소. 대통령께도 그렇게 말씀드려 주게."

(*조갑제 출판국부국장*)
(*이동욱 월간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