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숙 = 문학에 있어 페미니즘은 여성학이 아니라 인간학입니다.
인류의 문제죠. 총체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성들은
사고구조와 행동양태에 있어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남성들은 교착상태에 빠질지 모릅니다. 흔히 남성들은 페미니즘을
편협하고 좁은 인식체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정되지
않으면 21세기에 소통불능이 올 것입니다. 물론 여성 자체의
이중의식도 문젭니다. 과도기적 충돌 현상이죠. 성숙한 우리는
여성에게도 칼날을 들이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사회는
남성지배였기에 여성의 허위의식에 너그러웠습니다.
한기 = 입장을 이해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그러나 독자들이
볼 때 너무 공격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있을 것입니다. 페미니즘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쓸데없이" 공격적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닌지요. 정작 당사자는 공격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까지
포함해서 말씀드립니다.
차현숙 = 시작과 과도기에는 때릴 수밖에 없습니다.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서로 모순을 말해야 하고, 모순에 칼을 대야
합니다.
한기 = 여성들의 자기비판도 필요하지요. 이것은 여성독자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부문입니다.
차현숙 = 모든 것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설명이 됩니다. 여성들은 이제 조력자의 역할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려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역량과 문제점을
알아야 남성과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적대적으로 가게 되며, 인생이 고달퍼지겠죠. 같이
이중작업을 해야 순조로운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문제, 노인문제, 사회문제, 인류문제도 풀릴 수 있습니다.
한기 = 페미니즘이 아직은 엘리트 사이에 논란되는 문제개념인
것 같습니다. 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좀 특별한 느낌을
주기도 하죠. 지식인도 페미니즘에 대해 선뜻 자신이 없어합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대중과 접하는 자리입니다. 그들에게 알려지고
인식돼야 친근해질 수 있죠. 이것을 운동개념으로만 받아들이니
많은 여성들이 겁을 먹고 있어요. 그들은 페미니스트로 지칭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비평가들이 페미니스트라고 할 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도 있고요.
차현숙 = 저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하기 보다 총체적인 인간학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여성문학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기 = 90년대 최대 쟁점은 페미니즘 전쟁이었습니다. 모든 현장에서
벌어졌죠. 그러나 그 전쟁을 대변한 것은 문학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적
진출욕망이 차단될 때 그 의식이 문학적으로 표출된 측면도 있습니다.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차현숙의 '나비의 꿈'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죠. '나비의 꿈'은 존재론적 갈망을 다룬
것이며, 90년대의 존재론적 의미를 담았습니다. 처음부터 문학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좌절에서 문학으로 나아갔던 것이죠. 많은 독자들의
의식도 그쪽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차현숙 = 사회적 비난에 부딪쳤을 때 개인은 그것이 힘들기 때문에
표면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면으로 가보면 얼마나 역동적이고
싶은 것인지, 조력자가 아닌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요. 나는 그 욕구를 알기 때문에 생산자로서 작품을 쓰는 것입니다.
90년대 여성문학의 겉모습은 '성적 이탈'로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독자들의
욕구보다 우리의 생산품의 질이 너무 낮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한기 = 성적 욕망의 추구나 실천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흥미 본위로
다뤘던 것은 아닌지요. 불륜도 마찬가지입니다.
차현숙 = 제가 볼 때는 그것은 성 권력의 공정성을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여성은 성 본능, 표현, 행위 등에 죄의식을 더 많이 느끼고, 사회적 징벌을
감수합니다. 그래서 일찍 깨인 여성 소비자들이 성의 공정성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들의 성적 역동성은 대단합니다. 문학이 따라잡지 못하는
측면이 더 많죠.
(왜 그 싸움이 90년대에 왔습니까.)
한기 = 여성운동의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이죠. 미국에서는 인권운동
다음에 여성운동이 왔으나, 일반적인 양태는 노동운동 다음에 여성운동이
오는 것이죠. 제일 큰 요인은 교육과 관련돼 있습니다. 80년대 이후
여성교육의 확대는 의식의 확대를 가져왔고, 90년대에 특별히 페미니즘을
가르치지 않아도 여성들은 의식의 주체가 된 것입니다.
차현숙 = 지금 20대 작가는 여성문제를 거론치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커리큘럼에서 여성학을 접해본 세대죠. 막연하게 자기 존재를
자각하는게 아니라 텍스트와 연구실적을 놓고 공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으로 희생자입니다. 의식은 있는데, 현실은 걸레와 행주를
쥐여 줬죠.
한기 = 여성문학에서 경계할 점은 행여 꿈만 꾸고 실천적 의지를 갖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가짜 페미니즘으로 전락할 위험이죠. 제대로 길을
잡으려면 주체적 비판이 필요합니다. (* 정리=김광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