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계 학교는 유사시 스프링클러로 "물대포 쏘듯" ##
국내최고의 시설수준을 자랑하는 서울 여의도의 한 금융회사
본사사옥. 95년 준공 당시 첨단 중앙방재시스템, 광케이블
종합정보통신망(ISDN) 등을 구축,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이 빌딩이 작년 외국 부동산회사와의
사옥 매각협상 과정에서 국제적인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건물
실사에 나선 외국회사 안전진단팀이 빌딩의 허점을 곳곳에서
찾아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안전진단팀은 방화벽 미비 기준치에 못 미치는
경보음 관리부실로 기능을 상실한 스프링클러 등 20여가지 문제점을
뽑아냈다. 다급했던 회사측은 건물가격을 시세(1100억원)에 훨씬 못
미치는 990억원 대를 제시하고도, 뜻하지 않던 약점까지 잡혀 값을
더 깎아줘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결국 작년말 외자를 유치해 자금사정이 호전되면서 매각협상은
없었던 일로 됐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당시 건물 실사에
참여했던 방재컨설팅회사(OCSE-GBI) 대표 정성(54)씨는 『그런데도
보험회사는 이 빌딩의 안전성을 「특A급」으로 분류하고, 보험료를
8%나 할인해 주고 있었다』며 『국제기준과 국내기준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방재시스템에 관한 국제기준과 국내기준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미국의 소방기준에 따라 방재설비를
갖췄다는 경기도 파주의 외국계회사의 직영 보육원과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각각 찾아가 서로 비교해 보았다.
대만계 반도체회사 ASE코리아사가 직원 자녀들을 위해 운영하는
「어린이집」. 300여평의 단층시설로 7세 이하 60명의 어린이들을
수용하고 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천장에 촘촘히 박힌 스프링클러가
눈에 띄었다. 60평 규모의 메인홀에는 스프링클러 25개, 소화기 4개가
각각 설치돼 있었다.
놀이방과 메인홀 사이에 설치된 칸막이는 가공된 철재로 연기를
배출하지 않는 무독성 내장재였다. 국내 소방법상 화장실은 소화설비
면제지역이나 이곳은 화장실에도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고, 3평의
주방에는 분말소화기, 열감지기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동행한 방재전문가 이동훈(33·방재컨설턴트)씨는 『주방에는 화기가
많고 기름을 많이 쓰므로 습식소화기를 쓰면 감전 등의 위험이 있어
분말소화기를 비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찾아간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교실이 있는 2∼4층 복도를
따라 나무탁자 위에 수백장의 그림, 공작물이 가득 진열돼 있었다.
하지만 소방설비라고는 소화기 몇 개, 화재경보 송신기 2개, 복도 끝
유도등 2개가 전부.
방재전문가 이씨는 『국내 소방법상 복도는 화재감지기 설치
면제지역이지만, 이처럼 인화성이 강한 물건이 많으면 감지기를
달아야 한다. 미국은 모든 학교건물 복도에 연기감지기를 달아놓고
있다』고 말했다. 별관 1층에 있는 급식시설 역시 화재에 무방비상태.
교실 2개를 개-보수해 만든 이 식당에는 가스관이 천장을 타고 내려와
10여개의 주방기기들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소화기는 하나도 없었다.
또 지난 7월 정부종합청사 화재에서 드러났듯이 화재경보 시스템의
「오작동」을 걱정한 나머지 그나마 있는 화재경보장치를 꺼놓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실제 작년 11월 미국계 방재전문업체 한국사무소가 국내
대형건물에 대해 소방점검을 실시한 결과, 서울의 잠실, 압구정동, 명동
등의 대형백화점과 시내 중심가의 특급호텔, 여의도의 회사사옥 등
대형건물 상당수가 평소 경보장치를 꺼놓는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에 이렇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면 대피훈련이라도 제대로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실상은 어떨까.
서울 용산의 미 8군 초등학교에서는 6개월에 한번씩 화재대피 훈련을
한다. 교장이 예고 없이 「화재 훈련」을 지시하면 실제 사이렌이 울리고
전교생들은 유도등을 따라 건물 밖으로 침착하게 걸어서 대피하는 방식.
만약 학생들이 송신기를 잘못 작동하거나 대피시 뛰는 학생이 발견되면
훈련은 처음부터 다시 한다.
방재시스템 관리인 시저 포르테스(35·엔지니어)씨는 『1학년 아이들도
송신기 사용법, 대피요령 등을 잘 숙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방재전문가와 함께 둘러본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평소 대피 훈련이
전혀 없는 듯 어린이들이 화재경보 송신기 사용법을 모르고 있었다.
국내시설이라도 미국식 소방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ASE 코리아」 직영
어린이집의 경우, 단층 건물임에도 비상구가 3개나 설치돼 있었고, 11개의
방마다 「비상시 대피요령」 그림이 걸려 있었다. 현재 있는 위치와 불이
났을 때 아이들이 따라가야 할 동선이 빨간색 사인펜으로 표시돼
있었다.
차명숙(33) 원장은 『분기별로 비상대피훈련을 한다』며 『어린이들이
불이 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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