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결정치에서 무슨 일만 생기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말,
약방의 감초처럼 끼는 말이 「국민에게 사과하라」이다. 이번
「언론장악」 의혹 문건 파동에서도 「이회창 총재는 사과하라」
「대통령은 사과해야」가 엇갈리며 연일 등장했다. 도대체 이런
사건에 「사과」는 왜 끼여드는 것일까.
「사과=패배」라는 우리 특유의 공식이 있다. 사과는 잘못했다보다
미안하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이것이 패배로 둔갑했다. 앞으로의
메인 게임에서 여-야 어느 쪽이 백기를 들지는 예측불허인데 사과부터
하라니 그것은 우리식 게임법칙에 어긋난다. 「사과」가 이처럼 때마다
집요하게 등장하는 것은 실질보다는 추상적 명분론에 자주 빠지는 우리
정신문화의 유산 탓인지 모른다.
「사과」 한번으로 모든 걸 용서해 준다면 그것은 대단한 관용의
문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말 한마디로 관련 문제가 전부
해소될 수는 없는 복잡하고도 냉엄한 현실세계에 살고 있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은 쌀 시장 개방 문제를 비롯, 「성수대교」 「IMF
사태」 등으로 여러 번 사과했다. 지금의 김대중 대통령도 「옷로비」
건, 「내각제 무산」 등으로 유감과 사과를 표했었으나, 현실의 문제나
모순은 그와는 별개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여나 야가 언제 국민들로부터 「사과 요구」를 위탁받았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입으로만의」 사과는 결코 현실적 대안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정치인은 물론 일반사회인들도 유달리 「사과」에 집착하는
것은 시비-선악의 문제 등이 우리의 「법」에 의해 제대로 가려지지
않거나 못하고 있기에 명분의 고지를 선점하고 「목소리부터 크게 내는
게」 유리하다는 풍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여-야는 이번 문건 관련 국정조사에서도 「이 총재 나와라」
「김 대통령도 증인으로 해야」로 맞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선 직접 관련자부터 증인으로 해 일단 시작하면 될 일인 데도
이처럼 목소리만 크게 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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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면봉 ○
-- 또 다시 대형 화재 참사. 원인 규명-책임자 처벌-우리 자신 꾸짖기도
이젠 지쳤소.
-- 콜롬비아 40대 남자, 어린이 140명 살해. 두 손 들었소-양의 탈을
쓴 늑대 일동.
-- 여-야, 1000만원의 출처와 성격 놓고 론난. 때로 정치란 본질적으로
'돈싸움'이란 걸 입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