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몸에 전류가 관통하고 쉼없이 코속으로 물이 들어올때
그래도 숨이 붙어있는 육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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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은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습니다.』
김성학(49·강원 속초시 교동)씨는 29일 오전 거실 소파에 기대 힘들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 85년 12월 이근안 전 경감이 분실장이었던
경기도경 대공분실에 끌려가 받은 전기고문의 후유증을 아직도 앓고 있다.
『끌려간 지 3일 만에 이근안이 「전기고문을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경찰관 8명이 2인1조로 2시간씩 교대로 전기고문을 했습니다. 어떨 때는
하루종일, 가장 짧았던 때가 6시간 정도였습니다. 직접 고문도 하고, 가끔
들러보는 이 경감이 저승사자처럼 보이더군요.』
이 전 경감은 곰발바닥 같은 손으로, 몽둥이로 김씨를 폭행했다.
까무러쳤다 깨고, 산 듯 죽은 듯 그렇게 70여일. 그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부서졌다.
『얼마전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의사 말이 척추 디스크가
전기고문으로 다 녹아버렸답니다. 겉만 멀쩡하지 속은 사람 몸이
아니라는 거죠.』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작년 6월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아내
얘기를 했다.
『고문으로 몸이 망가져 어차피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지 못해 미안하던
터라, 눈물을 참고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는 81년 결혼해 경기도 하남시에서 전자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가정에 불행이 닥친 것은 첫딸 백일을 며칠 앞둔 85년 12월 초였다. 광주경찰서
형사 2명이 찾아와 『이상한 말하고 돌아다닌 적 없느냐』고 물었다. 71년
어로작업 중 납북됐다가 371일 만에 귀환한 뒤 그는 늘 감시의 대상이었다.
경기도경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전기고문 6회를 포함해 70일간
온갖 고문에 시달렸다.
『의자에 앉혀놓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얼굴에 수건을 덮고 큰 주전자로
물을 따라 숨을 못 쉬게 해요.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발바닥을 몽둥이로
내려치기도 했어요. 「너같은 놈 하나 죽여 인천 앞바다에 버리면 아무도
모른다」는 경찰관들의 위협을 들을 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미칠 것 같았습니다.』
이듬해 그는 간첩죄에 대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고문의
후유증으로 혼자서 일어나지도 못해 대소변을 모친이 도와줘야 했다. 주위에
있던 친구들도 떨어져나갔다. 최근 법원은 가혹행위와 관련해 그가 제출한
재정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결국 고문 가해자였던 경찰관들이
심판을 받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고문의 악몽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잠자다가 가위눌려 깨는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칠성판
(고문대)에 온몸이 묶여 움직이지 못한 채 누워 전기고문을 당해 실신하는
꿈을 자주 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