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한 이근안씨를 수사 중인 검찰은 「12년 만의 숙제」를 풀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다. 서울지검 지휘부와 수사팀은 평소보다 이른 오전 6시쯤
출근해 구수회의를 갖는 등 부산했다. 검찰은 수사 브리핑 때는
「수사기관이 검거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비난을 의식한 듯,
『아무리 범인이라도 법원의 영장 없이 집을 뒤질 수는 없다』는 등 신중한
태도로 일관했다.

29일 이근안씨가 조사를 받은 서울지검 현관 앞에는 이씨로부터 고문을
당한 함주명씨 등 고문피해자들과 임기란(70) 회장 등 민가협 회원 10여명이
「검찰의 철저수사」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이날 오후 2시10분쯤 이씨가 구속여부 심사가 열릴 수원지법
성남지원으로 가기 위해 서울지검 현관을 나서자 피켓 등을 들고 서 있던
민가협 회원 등은 『인간 사냥꾼』 『짐승만도 못한 』라고 외치며 이씨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고문 피해자인 이 모씨가 이근안씨를 향해 뛰어들어, 이를
제지하는 수사관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고문으로 인한 자백 때문에
16년간 수감생활을 했던 함주명씨는 이씨의 고문행태를 자세히 설명한 뒤,
『이근안은 나의 가족과 일생을 망쳤다』면서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나와
내 가족의 명예를 회복시켜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가협 회원들은 이근안씨의 엄정수사를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낭독한 뒤,
고문경관들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 특별검사 수사 등을
요구했다.

서울지검은 1∼2개월 전 쯤 이씨가 중국으로 도피했었다는 제보를 접수,
중국으로 수사관을 파견할 것을 심각히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양운
3차장은 『목격자들의 진술 등을 포함,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임 차장은 『아직 김근태씨 고문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대검의 한 간부는 『중국
도피 제보가 접수된 것은 사실이지만 확인 결과 이근안이 그 시간에 국내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알고 있다』면서 엇갈린 얘기를 했다.

28일 자수한 이근안씨는 29일 오후까지 계속된 검찰의 철야조사에
차분한 태도로 임했다고 검찰 관계자가 전했다. 이씨는 도피생활 도중의
행적, 자수동기 등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진술했다. 이씨가 자수 동기의
한 가지로 진술한 지병악화와 관련, 『자수하러 나올 때 지병인 당뇨병
약을 챙겨오지 않았다』면서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이씨는 새벽 무렵 잠시 눈을 붙였으며, 검찰청사 부근 식당에서 아침식사로
갈비탕을 주문해 한 그릇을 다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