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리에 살았는데 미군이 「대구 방면으로 피난시켜준다」며
7월25일 밤 우리를 강제로 사고 현장으로 끌고 갔다. 사고
현장에 우리가 자발적으로 간 게 아니다.』(정구헌·72)
『미군기에서 떨어진 폭탄 파편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같이 있던 오빠, 동생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양해숙·62·여)
『어린이들에게도 총을 겨눴다. 오른쪽 팔을 크게 다쳤다.』(정신웅·58)
29일 오후 충북 영동군청. 미국 정부의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조사반(반장 마이클 애커먼 육군 중장)이 피해 주민들을 만나
당시 상황을 청취했다.
노근리사건대책위 정은용(75) 위원장은 미국 조사반에 「미국
정부의 조사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일부에서
노근리 사건을 미군들의 오폭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군이 계획적으로 피란민을 학살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만약에 오폭이었다면 어떻게 폭격을 맞고,
살기 위해 도망가는 부상자와 어린이들에게 총을 겨눌 수
있었겠냐』고 말했다.
애커먼 조사반장은 『우리는 미국 정부로부터 「노근리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곳에 왔다. 오늘
면담은 진상규명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부 조사반은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의 학살 현장을 둘러봤다.
애커먼 조사반장은 피란민들이 집단으로 학살당한 터널 안의
기관총 자국을 보고 「미군이 어느 지점에서 총을 쐈느냐」고
질문했다.
조사반은 피란민들이 어떤 경로로 임계리에서 노근리로
이동했는지 주민들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현장 답사가 진행되는
동안 주변에서는 『미국은 「노근리 사건」 진상을 밝혀라.』,
『마산 곡안리에서도 피란민 학살이 있었다』고 외치는 시위가
계속됐다.
일부 시위자들은 조사반이 10분 만에 현장을 보고 돌아가려
하자 『학살 현장이 이곳 말고도 많이 있는데 왜 벌써
돌아가느냐』며 조사반원들이 탄 버스를 가로막기도 했다. 노근리
현장에는 내외신 기자 100여명이 몰려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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