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이 「물 먹은 전투기」 추락사고를 즉각 발표하지 않고 숨겨온 것은 사고 발생
이후 잇달아 있은 국정감사와 진급심사, 공군 창군기념 행사, 군수뇌부 인사 등을
의식한 의도적인 은폐가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군 당국은 과거에도
고위층 인사 때나 국정감사, 주요 행사가 있을 때 각종 사건, 사고 발표를 지연하거나
은폐했던 사례들이 적지 않아 이런 지적은 신빙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93년 12월 53억원 어치의 포탄을 해외에서 도입하려다 사기 당한 조달본부
포탄사기 사건은 군 수뇌의 인사조치 가능성과 국정감사 등이 맞물려 수개월 동안
쉬쉬하다 크게 불거졌던 경우이다. 당시 조달본부는 92년 12월 사기사건임을
알아챘으나 8개월 만인 93년 8월에야 권영해 장관에게 보고했으며, 그 뒤에도
국방부측은 이에 대해 발표하지 않았다. 당시 권 장관이 잇단 율곡비리 의혹 등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던 데다 9월 말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돼 크게 문제화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96년엔 모 정보부대장(소장급)이 수천만원대의 부대운영비를 횡령한 사건이 군
수사당국에 의해 확인됐으나 당시 군 수뇌부는 파문이 커져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 이 장성을 정기인사 때 「조용히」 보직해임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작년 말 공군 나이키미사일 오발사고와 내무반 수류탄 폭발사건 등 사건 사고가
잇달아 터졌을 때도 군 고위층에 불이익이 갈까봐 사고를 은폐했던 적이 있다. 작년
12월 당시 천용택 장관은 잇단 사건 사고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하자 『또
사고가 나면 물러나겠다는 각오로 일하겠다』고 공언했으나, 그 다음날 경기도
포천지역에서 훈련 중 발사된 130㎜ 다연장로켓 1발이 민간인 주거지역 인근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군 당국은 불똥이 천 전 장관에게 튈 것을 우려,
일절 발표하지 않고 현장을 수습하기에 급급했다.
군 일각에선 특히 매년 4월과 10월 군 정기인사 때는 진급 및 보직문제에 군내 관심이
집중돼 각종 사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거나 은폐 왜곡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실적을 과시하기 위한 무리수가 두어지기도 한다. 더구나 군
정기인사가 이번처럼 대장급 등 고위층 인사와 맞물릴 경우 그런 부작용은 더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북 경계 태세 및 군 전력증강, 군 개혁 등 군 본연의 임무 및 발전
추진은 뒷전에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 군 내부의 지적이다.
또 10월 1일 국군의 날이나 각군 창군 기념행사일 등 주요 행사가 있을 경우에도
발표를 지연 또는 은폐, 행사가 끝난 뒤 발표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군의 한 관계자는 『군 인사나 국정감사, 각종 행사 등을 이유로 사건이 은폐 또는
왜곡되면 뒤에 군 전체에 더 큰 문제를 안겨준다는 사실을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군
당국자들이 절실히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