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현택수의 종횡무진 책읽기'에 이어 한기호(41)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의 '한기호의 책마을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한씨는 온누리출판사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창작과 비평사에 입사,
지난해까지 영업기획실장을 역임한 출판마케팅 분야 베테랑입니다.
한씨는 연재를 통해 16년 출판마케팅 경험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이
어떻게 기획-제작돼 독자 손에 전달되는지, 한권의 베스트셀러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등 책 동네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전달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수고해주신 고려대 현택수교수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주)

최소 10만명 이상의 고정독자를 몰고 다니는 신경숙, 공지영, 은희경
등 여성작가 트로이카 이후 확실하게 선두주자로 떠오른 전경린의 '내
생에 꼭 하루 뿐일 특별한 날'은 이미 10만부 가까이 판매됐다. 이 소설은
남편의 외도 때문에 유폐의 나날을 보내던 여주인공 미흔이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의 첫 섹스에서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는,
불륜이 소재이다.

전경린의 작품 외에도 최근 소설시장을 주도했던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와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또한 비정상적
관계의 주인공들이 나온다.

이같은 소설의 유행을 통해 우리는 소설의 주독자층인 20대 초반을
전후한 젊은 여성들의 심리를 읽어낼 수 있다. 이들은 성담론이 크게
유행하고, 여대생이나 가정주부들까지 그들의 욕망을 위해 '풍속산업'에
뛰어들고, 가족 해체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실존적 상황을 살고 있다.
이런 현실 속의 여성들은 남편 이외의 남자와의 섹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여주인공들의 삶에서 '가지 않은 길의 파멸적 결과'를 보며
심정적 위안을 얻거나 혹은 '동병상련'을 느낄 지 모른다. 그것은 오로지
오락성만을 위해 불륜을 다루는 대중소설과는 또다른 정서적 위안이다.
이는 70년대 호스티스 소설이, 주독자층인 산업체 현장에서 일하거나
여고를 졸업하고 기업에 입사한 20세 전후의 젊은 여성들 또래 주인공의
삶을 통해 독자들에게 심정적 위안을 줌으로써 본격 대중독자의 출현을
알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

1929년 대공황이 들이닥친 미국의 출판시장에서 최대로 팔려나간
소설은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여주인공 스칼렛은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어찌보면 철저하게 상대를 이용한다. 1990년
버블(거품)경제가 무너진 이후 일본에서 최초로 300만부나 팔린 소설은
'실락원'(와타나베 준이치 지음)이었다. 각자 가정을 가진 두 남녀가
헤어짐이 없는 세상으로 가기 위해 동반자살을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IMF이후 한국 소설들 역시 불륜을 다루고 있다. 시기와 무대는
다르지만 경제적-심리적 공황이 겹친 총체적 공황시대에 대중이 거의
비슷한 주제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