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 하루 전인 지난 20일 잠적했던 '프랑스의 마지막 전범'
모리스 파퐁(89)이 22일 스위스의 스티 휴양지 그스타트에서 체포돼
프랑스로 압송됐다. 법정에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항소는 기각됐고,
유죄가 확정됐다. 이제 파퐁은 작년 4월 1심판결에 따라 파리 남부
교외의 교도소에 수감돼 10년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지도 모른다.

아흔을 코앞에 둔 노인을 스위스로 달아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파퐁이 종적을 감춘 직후 파퐁 변호인단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망명했다"며 "자신에 대한 부당행위가 바로잡힐 때까지 프랑스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57년전 보르드 지역의 유태인을 아우슈비츠로 보내,
죽게 한 '죄'에 대한 뉘우침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역사의 단죄'를
부정하고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파퐁의 죄과가 처음 공개된 것은 81년이었다. 파퐁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마이클 슬리틴이라는 역사학자가 40여년간
묻혀 있던 '반인류 범죄'를 한 주간지를 통해 폭로했다. 내무부-외무부
관리를 거쳐 나치의 꼭둑각시 정권인 비시정권하에서 보르도지역 치안
부책임자였던 파퐁이 42∼44년사이에 1590명의 유태인을 체포,죽음의
수용소로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83년 희생자 유족들의 고발로 파퐁은 정식
기소됐다.

그러나 파퐁을 법정에 세우기까지는 16년의 세월이 결렸다. 비시 정권
관리들의 수동적 행위를 단죄할 수 있는가라는 논란이 일었고,파퐁 자신이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였다는 경력을 내세움으로써 사실확인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또 전후에 코르시카와 알제리의 행정장관(47∼51년)을
역임했고,드골정권하에서 파리경찰국장,지스카르 데스탱 정권때 예산장관까지
지낸 파퐁의 경력은 드골정권 등 전후 정권에 대한 평가와 역사 해석 문제와
맞물려 여론을 혼란에 빠뜨렸다. 여기에 파퐁처럼 비시정권 관리 출신인
미테랑 대통령이 심리를 방해했다. 파퐁은 "공복으로서 거역할 수 없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95년 자크 시라크가 집권, 유태인 강제수용에 대한 프랑스의 국가적
책임을 처음으로 시인한 이후 비로소 파퐁에 대한 응징이 본격화됐다.
97년 9월 보르도 항소법원이 재판에 회부했고, 6개월후 파퐁은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파퐁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그 결과가 나오기 직전
국외 망명을 추진했지만 반인류범죄에 시효를 두지 않는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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