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북한의 백두산 일대 국경은 어떻게 그어져 있을까. 양측이 국경선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종종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지난 62년 체결한 중-북 국경 조약에서 천지의 60%를 북한 영토로 하는 국경선을
확정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백두문화연구소 대표 이형석(이형석·62·가천문화재단 문화부장)씨는 20일 『북한과 중국은 62년 10월
김일성과 당시 저우언라이(주은래) 총리가 서명한 「조-중 변계 조약(국경조약)」에서 국경을
확정지었다』면서 『92년 무렵부터 최근까지 현지 답사를 통해 경계비석이 21개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1∼5호 경계비는 압록강 발원지에서 천지 서쪽 백운봉까지 이어져 있으며, 6호부터 21호는 천지 동쪽
능선(장군봉·2750 에서 북쪽으로 2∼3㎞ 지점)에서 원지 남쪽 약수 인근 지점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
경계비는 70년부터 92년까지 시차를 두고 세워졌으며, 양면에 번호 표시와 함께 각각 「조선」과
「중국」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씨는 『현재 북한 영토는 1909년에 체결한 청-일 간도협약 때보다
280여㎢ 정도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중 국경조약이 있는 지도 확인해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지린성(길림성)위원회 문건에는 62년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저우언라이가 평양을 방문,
10월 12일 국경조약을 체결한 데 이어, 6개월간 탐측조사 후 64년 3월 30일 「조-중 변계 의정서」도 체결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이 문건도 『천지의 서북부는 중국, 동남부는 조선(북한)의 관할로 한다』는
정도로만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국경조약 전문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학계에선 북한이 중국의 6·25 참전 대가로 백두산 일부를 양보했을 것이란 추정과 중국측이
양보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엇갈려 왔다. 이에 대해 북한과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 지린성 당위원회 문건에 『천지의 54.5%가 조선(북한) 영토에 들어가, 홍위병들이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조선족 자치주 책임자를 「김일성 추종자」로 몰아 탄압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62년 조약에서는 중국이 양보하는 자세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 일대의 국경문제는 조선조 숙종 38년(1721년) 백두산 동남쪽 약 4㎞ 지점(해발 2200 )에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이후 논란이 돼 왔다. 정계비에 새겨진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으로 하여 이
분수령에 비를 세운다(서위압록 동위토문고어분수영상 늑석위기)」는 글의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측은 「토문」을 송화강 상류로, 중국측은 두만강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일제가 1909년 간도협약에서
선양(심양)∼다롄(대련)간 철도 부설권을 보장 받는 대가로 청나라 주장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백두산의 상당
부분과 천지가 중국쪽에 들어갔다.
62년 북-중 조약으로 백두산 최고봉인 백두봉(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 부름)과 송화강 상류지역 일부가 다시
우리 영토로 들어왔다는 것이 이형석씨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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