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 정보교류, 도전정신 .

삼성경제연구소는 20일 「재래 의류시장의 부활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동대문시장이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무장한 젊은 사업가들이 모여들고 있고 하루에도 수십개 업체가 창업하고
도산하는 등 경쟁이 치열하며 제품의 기획-생산-판매를 신속하게 결정해 초스피드 생산이 가능하고
관련업체가 모여 있어 정보교류가 활발하다는 점 등을 공통점으로 꼽았다.

동대문시장이 국제적인 패션-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일본 게이오대 경제학부 학생 62명이 동대문
의류패션몰 두산타워에 찾아왔다. 인솔자는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경제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시마다 하루오 교수. 시마다 교수는 『교과서나 뉴스를 통해 한국경제를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살아
있는 한국경제의 모습을 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동대문시장을 찾는 외국인은 하루 평균 2000명이 넘는다.
연간 수출액은 10억달러를 웃돈다.

동대문 점포수는 2만7000여개. 점포당 하나의 브랜드가 존재하는 독특한 구조다. 어림잡아 점포마다 1주일에
한 개씩 새로운 디자인이 나온다. 하루 4000종의 새옷이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독창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배겨나지 못하는 곳. 그래서 동대문시장은 「창업천국」 「벤처단지」로 불린다.

동대문 의류상가 디자이너 클럽 3층에 있는 점포 「오즈의 마법사」. 이 가게 최유복(32) 사장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를 배출한 문화복장학원을 지난 96년 졸업한 일본유학파다. 동업자인 부인
김종선(28)씨와는 서울 시대복장학원 선후배 사이. 최씨는 새벽 4시에서 아침 8시까지 하루 4시간밖에 못 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루 24시간 아이디어를 짜내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어제 나온 옷은 이미 구식이 돼
버리고, 오전에 나온 옷이 호응이 없으면 오후엔 매장에서 거둬들일 정도다.
『이렇게 안 하면 여기선 못 버틴다고 봐야죠.』 최씨 정도 나이만 돼도 신세대 패션을 따라잡기에 버거운
형편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벤처기업 창업에는 20∼30대가 흔하다. 그러나 경력을 중시하는 패션계에서 20∼30대 창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대문시장에선 갓 대학을 졸업했거나 고교졸업 후 복장학원에서 디자인을 익힌
젊은이들이 어엿한 사장님으로 등장한다. 신세대 동대문 상인들의 또 다른 특징은 돈벌이보다 성취감 자체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95년 2월 경원대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작년 8월 「동대문 사장」이 된
최은하(최은하·29·여)씨는 1주일에 3∼4종류의 새 옷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드니까 즐겁다』며 『내 옷을 이해 못하는 사람은 안 사도 좋다』고 말했다.

동대문에서 상가 「팀204」와 「밀리오레」를 관리하는 성창F&D는 지난 95년과 98년에 디자이너 양성을
위한 디자인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같은 교육을 받은 디자이너가 옷을 만들어 내면서 비슷한 모양의 옷이
쏟아졌다. 당연히 폐쇄됐다. 유종환 사장은 『동대문은 옷 만들기를 천직으로 아는 사람들의 진검
승부장』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동대문에선 냉혹한 「철의 법칙」이 통용된다. 주변 다른 점포의 영업에 지장을 준다고 판단된
점포는 관리회사나 상우회 등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는다. 밤 9시에 문을 여는 아트프라자. 개점
30분이 지나도록 점포가 문을 열지 않으면 상인들 모임인 상우회에서 즉각 달려가 셔터 자물통을 절단하고
문을 열어 놓는다. 1층에서 남방전문점을 운영하는 박 모(42·여)씨는 『그래서 동대문 상인은 아플 자유도
없다』고 했다. 힘있고 건강한 젊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패션협회 주상호(주상호) 사업부장은 『동대문시장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소비자들의 패션욕구를
의류메이커나 백화점보다 훨씬 빨리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그러나 실리콘밸리가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글로벌네트워크를 구축한 반면, 동대문시장은
상품판매처가 일본, 러시아, 동구 등에 국한돼 있어 국제화 초기 단계라고 분석했다. 또 실리콘밸리가 대학과
연구소의 첨단기술을 접목시키고 있지만 동대문시장은 상인들의 노하우에 의존, 기술개발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양희(김량희) 수석연구원은 『동대문시장의 성공 비결을 다른
중소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