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왔다.
"중2에 다니는 아이가 전교 1, 2등 해요. 특히 화학, 물리 과목을 좋아하고
잘해서 과학고를 보내려고 하는데, 내신 불이익 때문에 자퇴생 만들까봐….
과학고에 보내도 될까요?"
기자가 대뜸 물었다. "서울대에 안 보내도 상관없습니까."
그는 잠시 주저하더니 "일반 학교에 가면 충분히 서울대에 갈 수 있을텐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요즘 전국 16개 과학고에서는 2학년생들의 '자퇴'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절반 이상의 학생이 떠난 3학년 교실은 텅 비어있다. 학교에 남아있는
3학년의 상당수는 "2학년때 자퇴할 걸…"이라며 하루에도 몇번씩 후회하곤
한다. 입시에서 내신 불이익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져보자. 과학고 자퇴생들은 대부분 중학시절 전교 최우수 성적을
자랑하던 학생들이다. '고교 3년'이란 변수가 있지만, 일반 고교에 갔으면
최상위권에 충분히 들었을 것이고, 대체로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른바 '서울대 병'이라는 중병에 걸린 학생으로 낙인찍힌 채
학원가를 전전하고 있다.
한편에선 "비교내신제가 폐지된 걸 알면서도 입학하지 않았느냐", "왜 꼭
서울대를 고집하는가"라고 이들을 탓한다. 그러나 과연 이들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취재중 만나본 과학고 학생, 학부모, 교사 대부분은 비교내신제 부활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정상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보다 자퇴생이 유리한
획일적 입시제도를 원망하고 있었다. 과학영재들이 꿈을 접어야 하는 현실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그럼에도 교육 당국은 3년째 '남의 집 불구경'하듯
팔짱만 끼고 있다. 한 과학고 교사는 이렇게 개탄했다. "다른 나라에선
과학영재들이 고속도로를 마음껏 달리도록 있던 장애물도 치워줍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바리케이드를 세워놓고 있어요. 누가 경주에서 이기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