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사건 이후 미국 국방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른바 유사
사건의 연쇄 폭로다. 하지만 이미 한국 내에서 노근리 외에도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미 CBS방송은 한 한국전 참전
군인의 증언 등을 토대로 51년 북진작전 중 최소한 2건 이상의 무차별
양민사살이 자행됐다고 폭로했다.

미 정부 안팎에서는 이같은 주장들이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노근리 사건 때도 제기된 것이지만, 한국전 참전 미군들 상당수가
민간인으로 위장한 공비(공비)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양민을
학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미군 작전의 '비인도적 성격'이
폭로되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 전쟁 때였다. 전쟁 승리 또는 상황
장악이라는 명분 아래 잘못된 군 작전조차 대개가 덮어두기 일쑤였던
것이다. 따라서 냉전 초기에 벌어진 한국전은 상대적으로 민간인 보호에
대한 강조가 낮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CBS 방송은 한국전 당시
이등병이었던 레스터 토드씨의 증언을 토대로 51년 북쪽으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어린이와 여성 등을 가리지 않고 "걸어다니는 모든 것을 사살하는
작전이 진행됐다"고 폭로했다. 또 훗날 토드 이병의 보고를 상부에서는
'함구령'으로 묵살했고, 53년의 한 군 메모에 따르면 "미국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며 이를 비밀로 분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미군의 양민 학살 사건 조사는 이제 노근리 차원을 벗어나
한국전쟁 전체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미 국방부는 이같은 조사 확대에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계속 제기되는 학살 주장과 참전
군인들의 폭로를 감안할 때 불가피한 일이라는 지적들이다.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우선 노근리 사건 조사에 초점을 맞추고, 만약 다른 (학살)
주장들에 충분한 근거가 있을 경우 사안별로 이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CBS방송이 입수한 군 메모가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메모는
한마디로 '사건은폐' 지시다. 노근리 학살 주장에 대해 지난 5년여 동안
미 육군이 당시 관련 조사를 했지만 '구체적인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메모를 통해 미군 지휘체계 내에서 한국전
양민학살 사건이 인지됐으며, 또 그간의 육군부 조사가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도 별로 설득력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편 한국전쟁에서 무공십자훈장을 받았던 칼 버나드 예비역 대령은
L.A.타임스 기고문에서 "일본에 진주한 미군은 한국전에 참전할 준비가
돼있지 못했다"면서, "미군들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했던
원자폭탄이면 전쟁이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근리 동쪽 40㎞
떨어진 곳에 배치된 21보병연대 L중대 소위로 참전했던 그는 "한국전에
참가한 일본 주둔 미군들은 무기력과 정신적 해이에 젖어있었다.
우리 무기는 '기념품'이었으며, 통신장비와 무전기는 너무 오래 써서
낡아 이슬만 좀 내려도 '먹통'이 됐다"면서 "미군 병사들은 바주카포에도
끄떡없는 북한군 탱크에 극심한 공포감을 나타냈으며, 이것이 노근리
학살사건으로 나타났을 수 있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향후 조사는 한-미 양국간 필요한 분야에서 협력은 하되,
기본적으로 관련자료 검토와 증언 청취 등을 통한 개별조사 방식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당초 한국 정부 내에서 제기됐던 '공동 또는 합동 조사'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정작 한-미간에서는 본격적인 검토나 협의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