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셋에 한글을 깨친 그 기쁨은 누구도 모를 거예요.』

8일 서울 종로구 숭인동 수도학원에서 열린 한글날 기념식에서
「한글상」을 받은 서춘자(63·성동구 마장동) 할머니는 옛 생각이
나는지 선생님 지대식(50)씨의 손을 꼭 잡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그는 열살이 넘어 학교에 들어갔지만, 6·25로
1년 만에 배움을 접었다. 열여덟살에 결혼해 여섯 남매를 낳고 상경,
남편과 함께 리어카 과일행상에 나섰지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글을 몰라 은행이건 병원이건 혼자 가지 못했다. 동네 모임에서

글을 읽거나 써야 할 때면 슬그머니 화장실에 가곤 했다. 누가 종이를

내밀 때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못 배운 한에 혼자 눈물지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쌀 가게를 해서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낸 뒤 쉰넷에 비로소 한글공부를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정오까지 수업을 마친 후 오후 다섯시까지 혼자
남아서 공부를 했다.

「기역 니은 디귿」으로 시작한 한글 공부와 「하나 둘 셋」으로
시작한 숫자 공부가 재미있어 힘든 줄을 몰랐다. 한글을 떼고 초등학교
전 과목을 모두 마쳤다. 그는 중입 검정고시, 고입 검정고시를 차례로
통과했다.

몸이 안 좋아 남편 박병두(61)씨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자전거에 태워
학원을 오갔다. 서씨는 『배우면 배울수록 즐겁고 힘이 난다』며 『눈뜬
장님 같이 살아온 설움을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씨는 97년 방송통신대학에 진학해 국문학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은 처음 『한글이나 떼고 말겠지』 하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서씨는 『여건만 된다면 석-박사까지 하고 싶다』고 집념을 보였다.

533돌 한글날을 앞두고 가진 한글반 행사에 졸업생 자격으로 참가한
서씨에게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할아버지로 이루어진 초등학교 과정
학생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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