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실크 왕」이 대학강단에 섰다.
이번 2학기 숙명여대 의류학과 객원교수로 초빙된 이충일(40)씨는 필리핀에서 「실크 왕」으로 불리는
실크원단 디자이너다. 기하학적 무늬가 특징인 그의 원단은 프랑스 패션잡지 엘르 데코(ELLE DECO)가 지난
5월호에 7페이지에 걸쳐 소개할 정도로 호평을 얻고 있다고 한다.
96년 마닐라 APEC에 참석했던 18개국 정상(정상)이 입었던 필리핀 고유의상 「바롱」은 그가 제작한
원단으로 만들어졌다.
마닐라에서 「닐리노 실크」를 경영하고 있는 그는 『사장이란 타이틀보다 원단 디자이너(fabric designer)로
불리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서울고를 졸업하고 86년 필리핀 국립대학 관광학과에 유학한 이씨는 4년간의 공부를 끝내고 필리핀에
정착했다. 그리고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실크산업에 뛰어들었다.
90년 6000만원으로 실크 제작업을 시작한 이씨는 94년 마닐라에 원단공장을 세우고 자신의 디자인으로 원단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96년 APEC회담 때 선보인 바롱 원단은 실크 90%에 파인애플 섬유 10%를 섞어 까슬까슬함을 더한 신제품
실크였다. 이씨는 바나나 잎, 마닐라삼, 구리, 종이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소재를 실크와 배합해 300여종의
새로운 실크를 만들어 세계시장에 선보였다.
원단 디자이너로서 일을 시작한 지 4년 남짓 되지만 그의 원단은 입생로랑, 랑방, 에르메세, 샤넬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에 공급되고 있다. 이씨는 『패션 디자이너로 패션산업에 뛰어들고 싶은 유혹도 있지만, 원단
디자이너로서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의류학 분야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강단에 서달라는 뜻밖의 제안을 받고 당황했다』며
『뒤늦게 발견한 내 자신의 「끼」와 기술을 1년 동안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숙대
의류학과 대학원생 김정현(김정현·24)씨는 『이 선생님의 현장 경험이 많은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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