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석유화학과 정유업계를 담당하고 있는 이위재 기자의
'업계 꼴찌의 유가인상 전략'에 관한 글입니다.

올들어 중동 석유수출국들이 기름값을 마구 올리는 바람에 국내
유류가격도 덩달아 뛰고 있습니다. 3월부터 계속된 유가 인상은 현재
배럴 당 25달러를 넘 어 올들어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유류는 휘발유, 경유, 실내등유, 보일러등유
등으로 나뉩니다. 보통 월초에 인상폭을 결정하는게 관례입니다.
요즘처럼 국제유가가 꾸준히 올라가는 추세에서는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매달 휘발유값이 오를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월말에 미리
급유를 해두는 것도 경비를 절약할 수 있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경유나 등유 보다는 휘발유 값이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자동차를 모는 사람에게는 휘발유 값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10월 들어 SK㈜ -LG칼텍스정유 -현대정유 -쌍용정유 등
정유 4사는 휘발유값을 리터당 30원씩 올렸습니다. 보통차 1대를
충만시키려면 45∼60ℓ가 필요합니다. 휘발유값이 30원 오르면
'만땅'하는데 1350∼1800원이 더 드는 셈입니다. 올 초(1174원)과
비교하면 3000원 정도 돈을 더 내게 됐죠.

그런데 이 인상폭은 사실 국제유가를 반영한 게 아닙니다.
정유업계들은 이번 달에 60∼70원 정도 올리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쌍용이 먼저 30원만 인상한다고 발표,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쌍용은 지난 달에도 다른 정유업계들을
물 먹였습니다. 적어도 60∼70원 정도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준비하던 다른 정유업체들을 무시한 채 20원 인상만을 결정, 김을
뺐습니다.

쌍용이 이렇게 가격 경쟁을 주도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97년부터 이어져온 전통입니다. 당시에는 인하경쟁이라 쌍용이
내리면 타 업체들은 더 내리면 되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우가 다릅니다. 가격을 올리면
당연히 소비자들이 외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널린 게 주유소인데
기왕이면 싼 데서 넣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함부로 올릴 수 없는
처지입니다. 기름값은 또 물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정부
눈치도 봐야 하는 상황이라 맘놓고 올리지도 못합니다. 내리는 거야
정부에서 별 말 하지 않지만 올리는 건 직간접적으로 거론을 하죠.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쌍용은 업계 최하위입니다.
시장점유율은 보통 휘발유 기준을 산정하는데 대략 SK가 36%, LG가
32%, 현대 17%, 쌍용 15%입니다. (사실 시장점유율을 휘발유
기준으로 잡는다는 기준 자체가 문제가 있습니다. 정유업체 매출액
규모 중 휘발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쌍용은 또 매출액 중 휘발유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그래서
적게 올려도 다른 업체들보다 타격이 적습니다. 이런 이유로 쌍용은
다른 업체들들을 우롱하는 식으로 교묘한 경쟁을 펼치는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LG정유의 한달 휘발유 매출액은 3900억원 정도입니다.
ℓ로 치면 3억900만ℓ정도 되지요. ℓ당 60원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30원만 올리면 기업 입장에서는 120억원 정도 수입이 줄어드는
셈이죠.

인상가를 결정짓는 쌍용정유 최고경영자 김선동 부회장도 종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 유명합니다. 월말이 되면 기름값 인상을 김 부회장이
결정하는 거나 다름없는데 대개 막바지에 갑자기 결정합니다. 쌍용
눈치를 보는 다른 정유회사들은 속이 탈 지경이죠. 출장 갔다가 혹은
골프장에서 전화로 갑자기 통보, 사내 직원들도 직전까지 전혀
모르는 상태입니다.

'최하위가 1위를 주무르는 비결'을 쌍용이 보여주는 셈인데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사족으로 업계 얘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얼마전 개봉한 '주유소
습격사건'이란 영화 배경으로는 현대정유 오일뱅크 주유소가
나옵니다. 현대가 협찬을 했는데 당초 제의는 LG가 먼저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LG측에서 콘티를 본 뒤 "이 영화는 때려 죽여도
흥행이 안 될 것"이라며 고사했다고 합니다. 과연 영화가 얼마나
성공을 거둘 지도 약간 궁금합니다. /李衛裁드림 wj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