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20세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시작돼 소련이
해체된 1991년에 끝난다고 흔히들 말한다. 전쟁과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점철된 20세기상을 떠올린다면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90년대는 잉여의 시대인가.

90년대의 시대적 기상도는 탈냉전이다. 소련의 지배를 벗어난
동구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가 이데올로기 붕괴 후의 몸살을
앓았다. 미국과 소련을 양축으로 팽팽한 균형을 유지해온 세계질서가
무너지면서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아노미 현상이었다.

91년 벽두를 장식한 걸프전쟁은 '팍스 아메리카' 체제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달여만에 다국적군의 승리로 끝난 이 전쟁은

미국이 전세계의 맹주임을 증명했다. 90년대는 미국이 20세기 뿐

아니라 새로운 세기에도 세계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음을 확실히 했다.

정보산업과 금융에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미국은 다시 세계경제를

지배했다.

하지만 소련이라는 제어장치가 사라진 상황에서 자본주의는 탐욕성을
드러냈다. 전세계 시장에 월가의 논리가 통용되도록 강요했고,
동남아시아를 외환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투기자본을 중심으로 한
월가의 집단적 보복이었다. "99년도 재정흑자가 사상 최대규모인
1150억 달러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 경제가 이룩한 놀라운
업적입니다." 클린턴의 말처럼 미국은 "건국이래 최고의 풍요"를
구가하고 있지만, 시장경제 메카니즘에 모든 것을 맡기라는 신자유주의는
패권주의 미국의 이데올로기로 다른 나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냉전이 종식되자 민족 분규가 잇따랐다. 르완다에서 무차별 살육이
벌어졌고(94년), 코소보와 소말리아에서는 인종청소가 그치지 않고
있다(98년). 이런 세기말적 우울함 가운데도 희망이 있었다. 이스라엘과
PLO가 평화협정을 조인했고, 북아일랜드가 오랜 신-구교도 유혈분쟁을
종식시켜 밀레니엄을 앞둔 세계에 빛을 안겨주었다.

90년대는 또 지구촌이 무엇인지를 실감케했다. 전자통신과 운송의
발달로 지구인들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세계'를 공유했고, 다국적
기업의 등장으로 경제 국경이 없어져 GNP(국민총생산)보다 GDP
(국내총생산)가 국부(국부)를 재는 개념이 되었다. 빌 게이츠가
윈도우 95를 내놓으면서 전세계를 정보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속에서 또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90년대를 장식한 또하나의 화두는 환경이었다. 엘니뇨와 라니뇨 등
기상이변이 일상적 현상이 되자 92년 리우 환경회의에 185개국이 참가,
지구촌 환경문제에 머리를 맞댔다. 국내에서도 안면도 주민들의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 반대 시위(90년)로 촉발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다음해 3월
낙동강 페놀 오염으로 국민에게 위기감를 고조시켰다.

한국의 90년대는 대형 사건-사고로 점철됐다. 성수대교가 무너져
등교하던 여고생등 32명이 사망했고(94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어
6.25전쟁이후 최다 인원인 502명이 사망했다(95년). '한강의 기적'이
부실로 쌓아 올려진 모래성임을 알려준 한국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97년말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한국경제는 심각한 후퇴를 겪었다.

90년대는 잉여의 시대가 아니라 새천년의 씨앗을 뿌린 10년이었다.
탐사선 패스파인더를 발사해 화성 탐사에 나섰고(97년), 유전자
조작으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켰으며(97년), 만델라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300년에 걸친 아파르트헤이드(인종차별)를 폐지했다(91년).
새천년의 벽두는 우주, 생명, 환경, 미국, 인종-민족 분규 등의 단어가
중요한 화두가 될 것임을 예고한 시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