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차례로 놀이터를 빼앗겼다. 푸른 초원에서 운동장으로,
운동장에서 뒷 골목으로 점점 그 놀이 공간은 좁아만 간다. 이윽고
도시의 자동차는 아이들의 마지막 빈터인 골목길마저 빼앗고 말았다.
이 때 나타난 것이 바로 닌텐도의 비디오 게임이다. 아이들은 17인치
밖에 안되는 그 좁은 게임 공간에서 잃어버렸던 광활한 초원과 만난다.
마음껏 뛰어 놀고 웃고 소리치고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그래서 코
묻은 돈을 상대하던 닌텐도는 그 이익면에서 전자 메이커의 선두주자인
소니를 제쳤고, 그 전체 시장 규모도 2조엔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전자 게임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과 할아버지네들도 즐기는
놀이가 되었다. 20세기의 특성을 놀이로 풀이한다면 틀림없이 그것은
전자게임이라고 할 것이다. (이어녕 이화여대 석좌교수)

유럽과 미국 일부 지역에서 '닌텐도 한다'는 말은 곧 '전자오락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일본의 한 게임 소프트웨어 제조회사의 이름일뿐인 '닌텐도'.
'닌텐도'가 전자 게임의 대명사로 통용되게 된 사연은 14년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1985년 닌텐도는 '패미콤'이라 줄여 부르는 가정용 게임기를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정식 이름은 '닌텐도 오락 시스템(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또 '패미콤'과 더불어 새로 개발돼 미국으로 팔려나간 게임
소프트웨어가 바로 영화로도 히트한 '슈퍼 마리오(Super Mario Bros)'다.

그러나, 게임도 게임기도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패미콤의 개발은 이미
2∼3년전의 일이었고, 기존의 게임 방식을 뒤집어 놓은 정도로 따진다 해도
패미콤 개발을 즈음해 나온 '동키 콩(멍청한 원숭이)'을 빼놓을 순 없다.
'갈색의 고릴라가 분홍색 드레스의 공주를 구출하러 간다'는 개념의 '동키
콩'은 '블록 깨기'나 '인베이더'등 단순한 방식의 게임이 판치던 업계에서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 마리오'와 '패미콤'의 미국
수출은 한 일본 회사의 본격적 미국 진출이라는 개념을 크게 뛰어넘는
일이었다.

닌텐도는 미국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뛰어들던 첫해 이 나라 게임기
시장의 80%를 석권했다. 닌텐도의 이듬해 매출은 3억 달러. 업계 전체
매출이 4억달러였던 때였다. 당시 닌텐도의 미국측 마케팅 담당자는 "이게
바로 소프트웨어 산업이다"라며 큰 소리를 쳤고, 몇년 뒤 영국 일간지
'타임즈(The Times)'가 취급한 닌텐도의 미국 진출에 관한 기사는 '일본은
미국을 어떻게 점령했는가(How Japan conquered America)'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닌텐도는 원래 화투를 만들어 팔던 영세 기업이었다. 1898년 교토에서
출발해 50년 쯤 지나 '트럼프'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일본 최초의
플라스틱 재질 트럼프였다. 당시 회사 이름은 '닌텐도 골패 주식회사'.
1963년, '닌텐도'로 이름을 바꿨다. '동키 콩'으로 국내 시작을 석권하고,
'패미콤'과 '슈퍼 마리오'로 미국 시장마저 석권한 닌텐도는 1990년 16비트
게임기 '슈퍼 패미콤'을 만들어 내며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세계 전자 게임
시장은 닌텐도 손아귀로 들어왔고, 슈퍼 마리오 형제는 희대의 게임
캐릭터로 떠올랐다.

화투, 트럼프를 제조하던 영세 기업의 화려한 성공은 단순히 20세기
오락산업의 번성을 대변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두뇌산업은 불황을 타지
않는다'는 20세기의 격언을 확인시켜준 하나의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