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94년 10월 북한과의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한
핵 문제를 단속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번 베를린 합의는
북한 미사일을 다루고 있다.

제네바 합의의 골자는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고, 3개월 내에
무역-투자 장벽을 축소하며, 연락사무소를 교환하고, 관계 진전에
따라 대사급으로 양국관계를 격상시킨다는 것. 북한은 대신
핵 사찰을 수용하고 핵비확산체제(NPT)에 잔류하기로 했다.
사실상 북한의 핵을 동결시키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제네바 합의는 적지 않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미-북 관계의
기본틀로 '대접'받고 있다.

이번 베를린 합의는 제네바 합의에 비해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
오히려 이번 합의는 93년 북한의 핵개발을 잠정 중단시키기 위해
뉴욕에서 열린 갈루치-강석주 회담 후 발표한 '공동발표문'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시 미-북은 ▲핵무기 불사용 ▲한반도 안전보장
▲상호 주권존중 ▲평화통일 지지와 같은 추상적인 원칙에 합의했었다.

그 후 미-북은 이 성명을 모든 회담의 전제로 활용, 1년 뒤에 제네바
합의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번 '베를린 합의'는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원칙 합의 정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미사일 동결이라는 측면에서는 초보적인 합의지만, 제재해제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베를린 합의는 제네바 합의의 '실행계획'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회담 관계자는 "미국이 북한측에 상당히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설명했다"며 "조만간 그 첫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제네바 합의를 '순진하게' 해석하면 미국과 북한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교류단계에 올라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여러 이유와
논리로 관계개선을 미루어왔다. 북한의 잠수함 침투, 미사일 개발,
연락사무소 개설 거부와 한국측의 견제 등도 원인이 됐다. 북한도
제네바 합의에 명시된 남북관계 개선에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제네바 합의 이후 5년 만에 다시 베를린 합의가 필요했던 사실은
미-북 관계개선의 한계와 진전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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