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식만 `달달'… 고차원 응용력 뒤져 ##

수학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산업 금융 정보통신 국방 등
수학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 사회과학도
기본 바탕은 수학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학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아니면 간과하면서 21세기 국가경쟁력을 외치고 있다. 일선 학교의
수학교육은 단순 수리계산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우리 수학의
현주소, 수학의 위력, 수학 경쟁력 우위 선점을 위한 세계 각국의
분투 현장을 두차례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

우리의 수학수준은 어디쯤일까.

수학실력을 가늠하는 잣대의 하나는 국제적 학술회의 개최여부이다.
미 수학회가 1년에 6번씩 100여개의 학회를 개최하는 등 미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적 학술회의만 200개가 넘는다. 일본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수학 학술회의가 20여개가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한수학회에서
봄 가을 개최하는 학술회의 정도가 그나마 알려진 정도다.

서울대-포항공대 교수들이 주도해 올해로 4년째를 맞는
'다변수복소함수론 학술회의'. 최근 미 수학회 책자에 회의내용이
실려 '유망 학회'로 떠올랐다. 외국 수학자 20여명 등 매년 80여명이
참가한다. 하지만 총경비는 1500만원 정도. 포항공대 김강태(42)
교수는 "대부분 교수들이 연구비에서 한두푼씩 모아 학회를 지원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초등-중학생들은 특이하게 국제평가에서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88년 1위(중학생),
90년 1위(초등-중학생), 95년 1위(초등3년)-2위(초등4년)…. 전세계
학생들이 참가한 국제교육발전평가(IAEP)와 제3차 국제수학과학성취도
평가연구(TIMSS)에서 한국팀이 차지한 성과다. 오히려 미국은 작년초
평가결과 수학부문에서 16개국중 15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 요란한
자성론이 일었다.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반복훈련을 통한 단순 수리계산은 우리가
앞서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다는 점이 증명되니까요." 한국교육평가원
관계자는 우리 수학실력은 '용두사미'의 표본이라고 했다. 고교
수준으로 올라가면 사정이 영 달라진다는 것이다.

고교생 대상의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우리는 대부분 10위권
밖이었다. 88년 첫 참가때 22위(60개국 참가)를 한 이후 작년까지
12위(76개국 참가)를 기록했다. 최고기록은 올해 7위(81개국 참가).
초등-중학생 수준의 '문제풀이'는 잘 하는데, 고차원 수학부터는
확연히 달라진다. "우리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방편으로 수학을
이용하기 때문"(우정호·대한수학교육학회장)이라는 것이 수학계내의
공통된 견해다. 창의적 이론으로 수학계 발전에 공헌한 수학자에게
수여되는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Fields) 메달'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데서도 현실을 알 수 있다.

반면 미국은 초-중-고 학생들의 수학실력과 달리 각종 첨단이론을
선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주식시장 변동을 설명하는 '프랙탈'이론이나
국제간 분쟁을 분석하는 '게임이론', 가전제품에 응용되는 '퍼지이론'
등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드는 각종 이론적 토대의 상당수를
미국 수학자들이 제공했다.

90년대 초 김강태 교수가 미국 브라운대에서 기하학 수업을 할 때의
일. 자동로봇 분야에서 유명한 같은 대학 공대 쿠퍼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듣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쿠퍼 교수는 김 교수에게
"혈관 수술에 쓰이는 자동제어 마이크로 머신을 연구하는데 기하학
실력이 딸려서 찾아왔다"며 "로봇은 혈관 내 이상부위를 수백개씩
체크하는 과정에서 중요부위의 가로, 세로, 높이 등 값을 계산해내는
데 수학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수학과와 이공계 다른 분야가 공동연구하는 경우도
거의 없을 뿐더러, 수학 각 분야간 아이디어 교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권길헌(수학과) 교수는 "우리의 수학연구는
세계에서 중간정도 수준"이라며 "공식을 외우고 대입하는 식의 훈련을
통한 문제풀이에 치중하다 보니 창조성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 입학과 동시에 수학에서 손을 떼고, 수학을 전공하면
배고픈 길로 들어서는 것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수학발전 저해에 큰몫을
하고 있다. 현재 수학 박사학위를 따놓고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이
300여명쯤으로 추산된다. 서울대 지동표 교수는 "외국과 같은 국책연구소도
없을 뿐 아니라 기업 연구소들도 수학 전공자를 외면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경제중심지인 월(wall)가에서 활약하는 수학자만 10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현대 금융공학의 꽃으로 불리는 각종 파생상품을 개발해내는
등 국제금융시장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세계적 통신회사
AT&T 연구소인 루슨트 테크(Lucent Tech)에서도 전체 연구원의 20%를 넘는
수학자가 최첨단 통신기술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변변한 수학연구소 하나 없이 수학자들이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대한수학회가 이제 겨우 '수학연수센터'(가칭) 설립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인하대 양재현 교수 등 일부에서 사설 연구소를 세워놓고
'수학도서관'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다만, 이 어려운 와중에서도 국내 수학자들의 외형적 지표상으로 나타난
연구성과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지난해 조사된 92∼96년 수학과 교수
논문 과학논문인용색인(SCI) 인용 빈도에 따르면 예일대, MIT, 스탠퍼드,
하버드, 프린스턴 교수들이 평균 0.28이었고, 서울대 0.21, 과학기술원
0.17, 포항공대 0.14 등으로 나타났다. 대한수학회 김성기 회장은 "A급
수학 저널에 발표되는 논문을 기준으로 볼 때, 95년 이후 대한수학회
정회원이 발표하는 논문 편수가 전세계 논문 편수의 1%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김성기 회장은 "모든 산업의 핵심인 수학에 대한 투자가 없다면 국가
발전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식민지' 시대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따끔한 경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