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간의 동티모르 취재를 마치면서 진심으로 이들의 화평을 간절히
빌었다. 기자는 민박집 방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깜짝 놀랐다. 거실은
소리도 없이 마을 사람들로 점령당해 있었다.
그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TV에선 「독립찬성 78.5%,자치찬성 21%」
란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유엔에서 동티모르인들이 압도적으로 독립을
지지했다는 주민투표 결과를 공식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4일 오전 9시
3분--.
현장에서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무도 따라
서 박수 치지 않았다. 기자는『축하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침묵이 이
어졌다 . 대신 그들은 기자의 손을 꽉 잡고 부둥켜 안으면서 눈물을 흘
렸다. 그것도 집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갈새라 조용히 흐느끼기만 했다.
400여년의 포르투갈 식민지, 24년간의 인도네시아 압정에서 벗어나
드디어 어엿한 제 나라를 갖게된 역사적이고 기쁜 날인데도 동티모르인
들은 마음놓고 웃지도 소리치지도 못 했다. 그들의 마음 속을 짖눌러
온 단어는 단 하나, 바로 '공포'였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인도네시
아 군ㆍ경이나 민병대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의 무
조건 항복으로 광복을 맞이한 서울 시민들이 시내에서 환호작약하던 사
진을 떠올리면서 집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거리는 정적 그 자체였다.마
치 「유령의 마을」처럼 단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웃 밀레니
씨집을 찾아갔더니 문을 잠그고 커턴까지 친 채 TV를 보고 있었다. 그
역시 말없이 끌어안기만 했다.
차를 타고 시내를 돌아 보았으나 군ㆍ경찰, 그리고 기자들외에는 아
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철저한 침묵과 은신이 동티모르인들의 생존의
지혜였다. 인도네시아는 24년간의 참혹한 무단통치로 그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가르쳤던 모양이다.
(* 딜리(동티모르)=함영준기자 yjhahm@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