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베니스는 온통 스탠리 쿠브릭 이야기뿐이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 은 개막 하루전인 8월31일과 1일 이틀동안 7차례나 상영
했지만 그때마다 관객이 빼곡히 들어찼다. 개막식에서 주최측은 `스파르타쿠
스' 에서 `풀 메탈 자켓' 까지 쿠브릭 작품들 장면을 멋지게 이어붙여 상영
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쿠브릭에게 바치는 헌사를 낭독했다.`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 `클락웍 오렌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통해 새 영화
언어를 발명하며 영화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이 기인은 올해 베니스에서
최대 스타로 떠오르며 금새 부활했다.
1일 리도섬 살라 엑셀시오르에서 열린 주연배우 탐 크루즈,니콜 키드먼 기
자회견에서도 질문은 대부분 쿠브릭과 관련해 쏟아졌다. 키드먼은 `그에게서
배운 것은 연기만이 아니었다.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헌신에 깊은 감명
을 받았다' 고 말했다. 크루즈는 `세간에 괴팍한 사람으로 알려져있지만 그
는 더없이 자상했고 유머러스했으며 지적이었다' 며 십몇개에 이르는 형용사
로 그를 회상했다. 미국내 흥행성적이 신통치 않았다는 지적에 키드먼은 `그
의 영화는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성적으론 평가할 수 없다'며 `영화 역사
가 그의 작품 가치를 판명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개막 상영으로 `아이즈 와이드 셧'은 유럽지역에 처음 공개됐다. 미국서는
지난 여름 개봉됐지만 성기가 드러나는 일부 장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
했던 것과 달리, 베니스에서는 원본 그대로 상영했다.
영화는 뉴욕 상류층 의사 부부의 성적 환상을 다룬다. 쿠브릭 대표작으로
꼽기는 어려워도 그의 뛰어난 재능이 잘 드러난 수작임에 틀림없었다.루이스
부누엘 작품을 스릴러로 만든 것처럼,곳곳에서 욕망의 어두운 그림자를 날카
로운 통찰력과 빼어난 조형력으로 생생히 그려냈다.평온한 일상뒤로 감춘 뒤
틀린 욕망이 장엄하기까지 한 밀교풍 그룹섹스 장면에 담겼다.쿠브릭은 피
아노 건반 하나만으로 관객 신경을 극도로 날카롭게 자극하기도 했다.전체적
으로 짙게 풍겨나는 것은 쿠브릭 특유의 냉소주의. 부부는 다시금 사랑을 다
짐하지만 화해를 담은 엔딩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인간을 믿지않는 쿠브릭의
싸늘한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