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황제'를 꿈꾼다면 오늘 '황태자'에 올라야한다. 이것은
힘으로 서열이 결정되는 정글의 법칙이기도 하다. 만 25세, 오단
이하 청년 기예들 가운데 추리고 추려 남은 목진석(19)과 원성진
(14). 두 루키 간의 황태자 자리를 건 '책봉 싸움'이 마침내 1일
스타트한다. 제3기 신예 프로 10걸전 결승 3번 승부 첫 판이다.
목진석 사단은 지난 해 신인왕전 우승자. 그는 거의 같은 무렵
벌어졌던 2기 신예프로 10걸전서도 결승까지 올랐었다. 이미 신인
타이틀 정상 정복 경험자란 얘기다. 올해 초엔 기성 타이틀을 놓
고 이창호와 도전기를 펼쳤다. 150여 국내 기사들의 98년 상금 순
위에서 그의 랭킹은 5위. 그 메리트로 목진석은 올해 벌어진 국제
대회에도 거의 빠짐없이 출전했다. 한마디로 무늬(?)만 신인일 뿐,
관록은 이미 웬만한 기성 강자 뺨칠 정도다.
원성진은 목진석에 비해 다섯살이나 아래. 국내 현역 프로들 가
운데 최연소이며 기사 경력 16개월에 불과하다. 숱한 타이틀전 본
선자 명단에서도 그의 이름은 눈에 잘 띠지 않는다. 하물며 국제
대회는 아직 언감생심(?)이다. 이번 결승은 해보나 마나라는 생각
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바둑계 일각에선 조심스럽게 고개를 가로
젓는다. 요즘 심상치 않은 원성진의 행보를 볼 때 "결코 속단할
수 없는 승부"라는 것. 아닌게 아니라 이 올챙이가 지난 7월 말
저지른 사건(?)은 관계자들을 경악시키기에 족했다.
당시 제6회 한-일 신예 교류전이 서울서 벌어졌다. 두 나라의
최정예 주니어들이 정기적으로 양국을 오가며 겨루는 비공식전이
다. 결과는 한국이 29승 27패로 신승했는데 문제는 원성진의 활약
이었다. 오야 팔단, 나카노 구단, 아키야마 육단에 이어 최종일
야마시다 육단 마저 일축한 것. 그 결과 원성진은 한국 선수중 유
일하게 4전 전승을, 8할대의 가공할 승률로 일본 바둑계 차세대
최선봉에 꼽히는 야마시다는 3연승 끝에 뼈아픈 패점을 기록했다.
원성진은 그보다 앞서 매일회란 이름의 청소년 연구 그룹 6월
리그에서도 하극상(?)을 저질렀다. 12승 3패. 최정상권의 일각으
로 성장한 최명훈 칠단과 동률 1위였다. 그러나 비공식전은 승부
의 농도에 있어 공식 대국과 비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8월
말 현재 올 승률서 목진석은 2% 포인트 가량 원 이단보다 뒤져있
는데, 이 역시 대국의 품질(도전기, 국제기전 등)을 감안해야 한
다는 지적. 둘 간엔 아직 한번도 공식 대결이 없었다.
모든 청년 강자들의 공통된 표적이 이창호(24)라 할 진대, 이들
셋이 약속이나 한듯 다섯살 터울이란 사실도 공교롭다. 이창호를
향해 질주중인 목진석으로선 후배들의 태클을 사정없이 뿌리쳐야
하고, 원성진은 목진석으로 대표되는 '힘센 형 들'의 봉우리를 일
차 정복해야 할 입장이다. 목진석이 이기면 최초의 신인 타이틀 2
관왕, 원성진이 승리하면 입단 후 최단기간 타이틀 기록이 얹어진
다.
약관 15세때 국가대표로 선발, 그 즉시 중국의 거함 섭위평을
눕히는가 하면 작년까지 75%대의 가공할 승률을 장식해온 목진석.
철없는 개구장이 처럼 무림의 질서를 마구 헝클면서 돌진을 거듭
하는 바둑계의 막내 원성진. 애들 싸움(?)도 이 정도면 초-한 대
결의 재미보다 뭐가 못하겠는가.
(* 이홍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