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천둥 같은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또 무장민병대들의 난동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엉뚱하게도 수탉들의 울음소리. 이른 새벽 딜리
주민들이 기르는 닭들의 우렁찬 합창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50분. 밖은
여전히 컴컴했다. [독립이냐 자치냐]를 결정하는 동티모르인들의 역사적 주민투표
전날인 29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오전 6시 시내 [주교의 집]. 동티모르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카를로스 벨로 주교의 사무실 겸 숙소 앞마당에서 5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옥외미사가 시작됐다. 일요일 새벽미사는 항상 벨로 주교가 집전했으나,
지방 순회미사를 주재하는 바람에 참석치 못했다.
그동안 무장민병대들의 난동으로 대낮에도 문을 걸어 잠그고 집에 숨어있던
주민들. 그러나 지난 400여년간의 포르투갈 지배와 그 뒤를 이어 23년간
인도네시아의 강제 합병 및 강압통치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앞두고
주민들은 성장(성장)을 하고 자녀들 손을 잡고 성당으로, 교회로 몰려나와
신의 은총을 간구했다.
벨로 주교의 측근 프란시스코(45)는 {30일 투표에서 독립을 지지하는 표가 쏟아져
나올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은 모두 하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거리 사람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침착했고 안정돼 보였다. 그러나
이날도 친인도네시아계 자치 지지파 2명이 독립 지지파 본거지인 딜리 시내에서
총을 발사하다 괴한들의 습격을 받고 숨지는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오전 8시 발리디 성요셉 학교 구내. 무장민병대의 위협 때문에 피신한 주민
200여명이 교실과 강당에서 합숙을 하고 있었다. 때묻은 매트리스와 가재도구.
마치 수재민촌 같은 모습이다. 유일하게 영어를 하는 조니(27)는 {식량과 물,
약품이 모두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이름이 아보니인 생후 1년2개월된 사내아이가 영양실조와 병에 걸려 엎어져
있었다. 파리떼들이 쉴새없이 달라붙곤 했다. 마치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 같은 모습. 그의 아버지는 독립을 주장하는 동티모르 무장반군조직
프레틸린(FRETELIN) 소속으로 현재 산속에 은거중이고 어머니와 함께 있다고
한다.
조니는 {30일 투표를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두려운 듯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당신이 잘 알지 않느냐}는 뜻으로 히죽 웃었다. 이같은 모습이
동티모르인들의 일반적 반응이다. 인도네시아군의 압제하에서 공포와 침묵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경계심이 풀리면 {나는 독립을 원해요.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라고 말한다. 기자가 만난 사람치고 민병대를
제외하고 {독립을 반대한다}거나 {자치를 원한다}고 답한 동티모르인은 없었다.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는 상태다.
이날 오전 9시부터 딜리의 민병대조직 아이타락(AITARAK) 대원 수백명은
얼룩무늬 군복이나 검은색 유니폼 차림으로 모터사이클과 트럭에 나눠타고
세(세)행진을 했다. 최후까지 공포 분위기를 조성, 주민들의 표를
자치(자치)쪽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오전 10시 유엔 동티모르파견단(UNAMET) 본부 강당. 동티모르 파견
인도네시아군과 경찰의 총수, 독립파 게릴라조직 팔린틴(Falintin)과 자치파
민병대의 대장들이 서로 맞대면하고 보도진 앞에서 [무기소지 금지] [법규 준수]
[상호 방문] 등의 합의사항을 약속하고 악수를 나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서로
약속을 지킬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동티모르인들의 독립영웅이자 지도자인
사나나 구스마오(53)도 연금중인 자카르타 자택에서 연일 동티모르인들 간의 화해
및 용서를 주장하고 있으나, 그 외침은 요원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만큼
동티모르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