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시선집 '부
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우석균 옮김·민음사)가 이번 주에 나온다.
보르헤스는 현실 재현의 리얼리즘이나 내면 탐구의 모더니즘을 환상
적 상상력으로 결합, 20세기 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가로 유명하다. 하
지만 그의 문학적 출발점은 시였다. 시집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의
첫 머리를 장식한 '축복의 시'는 보르헤스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책
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라면서 이 시를 쓸 당시,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됐지만, 거의 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 시에서 도서관은 신의 건축물이다. 신은 시인에게 책(진리
의 빛)을 선사했다. 눈이 침침한 시인은 보르헤스이기도 하지만, 신의
책을 해독하지 못한채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든 인간의 운명을 뜻
한다.
또다른 시 '거울'은 '거울은 자신의 현란한 거미줄에/이 모호하고 덧
없는 세계를 연장시키네'라고 노래한다. 거울이 낮(빛 혹은 현실)의 반
영물을 만든다면, 꿈은 밤(어둠 혹은 상상)의 환상을 빚어낸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한낱 반영과 미망임을 깨닫도록/신은 꿈으로 교직된 밤과/
갖가지 거울을 창조하였네/밤과 거울은 그래서 우리를 흠칫하게 하지'라
고 읊는다.
보르헤스의 시는 신과 인간, 실재와 관념, 의식과 무의식, 상징과 해
석 등등 인류의 오랜 화두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더구
나 오늘날 이미지가 현실을 압도하는 가상 현실의 시대가 도래했기에 더
큰 울림을 남긴다. (*박해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