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한국 사회에 단군조선과 상고사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태풍의 눈은 시인 김지하씨다.

단군조선은
민족주의 성향이 짙은 한국 사회에서 인화성 강한 사상적 뇌관 중 하나였다. 여기에 사상 운동의 스타
김지하씨가 [생애 마지막 운동]이라며 뛰어듦으로써 바람의 향방은 가늠하기 힘든 상태다. 김씨의
단군조선관(관)은 그의 감성적인 수사(수사)를 통해 과거 어떤 단군조선론보다 더한 흡인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객관과 이성의 이름으로 그의 단군조선론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씨의
단군조선 부흥 운동은 17일 세종문화회관의 대심포지엄을 통해 처음 대중과 만나는 공개 수순을 밟았다.

단군조선론은 세기말 한국 사상의 진로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 심포지엄 발표 주제와 분위기, 역사상
단군조선론의 추이 등으로 특집을 엮는다. /편집자


민족정신회복시민운동연합 주최로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올바른 상고사 복원을 위한 민족
대심포지움]은 상고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분출된 뜨거운 현장이었다. 회의장을 가득 메운 300여명의
청중들은 5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발표 중간중간 박수를 보냈다. 김병모 한양대 박물관장, 신시(신시) 연구가
김영래씨, 사회학자 우실하씨등의 주제발표를 시민운동연합대표 김지하 시인이 사회를 맡았다.

김 시인이 [일본의 우경화]를 지적하며 회의가 시작됐다. 그의 단군조선론 발상 배경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일본 극우파의 재무장 조짐은 자위 수준을 넘어선다. 그들의 우경화는 전후 수십년의 교육을
바탕에 깔고 뿌리 깊다. 그런데, 청와대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있고, 문화부, 교육부는 원래 그랬다. 지금
단군을 찾는 것은 민족 뿌리 찾는 게 아니고 사활의 문제다.} 참석 인파들은 술렁였고, 곧이어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김병모 관장은 그간의 고고학 연구성과를 상고사 분야에 적용시켰다. [상고사 왜곡, 그 실체와 대안] 발표를
통해 김관장은 {3000여년전 비파형 동검을 사용하던 사회가 중국 요녕에서 대전 부근까지 걸쳐 있었으며, 이
사회의 지도자가 바로 단군}이라고 주장했다. 중국대륙이 은왕조에서 주왕조로 넘어가던 시기, 동이족의
일파가 생존권을 위해 결속했다는 설명이다. 김관장은 [비파형 동검]이란 중국식 용어를 폐기하고 [고조선식
동검]을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김영래씨는 단군신화를 경제-인류학적인 측면에서 풀이하며 당시의 국가체제를 실체로서 해명하려 했다.
[미래 세계 경제체제로서의 신시와 전원일치제 민주주의로서의 화백] 발표를 통해 김씨는 {단군신화는 시장
창건을 신화화한 것}이란 주장을 폈다. 말 그대로 경제적인 의미를 갖는 이 시장 안에는 청구를 해오는 사람이
있고, 조달을 책임진 사람이 있어 각각 단군(단골)과 왕검(임금)이다. [홍익인간]도 이념적 선언이 아닌, 시장
운영 원칙이란 주장이다.

우실하씨는 위서(위서)로 도외시 당하는 [천부경]등 비서(비서)들의 복권을 통해 역으로, 상고사의 정당성을
입증하자는 취지를 얘기했다. 우씨는 [단군신화론과 민족사상의 뿌리] 발표를 통해, 북방민족들에겐 중국과
구분되는 고유의 사유체계가 있다고 했다. 그 체계를 우씨는 [3수 분화의 세계관]으로 불렀다. 우씨는 {민족
비서(비서)들에 이같은 논의가 일관되게 나타나고, 유물로도 확인돼 그 책들이 가필된 것이라 해도 제도학문의
연구대상이 될 가치가 있다}고 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사이 김지하 시인은 사회자 자격으로 짬짬이 발언하며 [강단 사학자]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회의 시작 쯤엔 {음산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침묵은 건방지기 짝이 없는 것}이란 말을 했고,
끝날 때 쯤엔 {자칭 실증주의 학자들이란 시골 엿장사가 들고 다니던 일제 때 저울 같은 존재}라고 했다.
회의 초반 잠시 참석했다 곧 자리를 뜬 고려대 김정배 총장의 기조강연은 상고사 복원 논의에 대한 조심스런
제동으로 눈길을 끌었다. 김 총장은 강연을 통해 {엄정한 사료비판 없이 감정적으로 고조선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칫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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