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래미스는 탐 셰디액과 함께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재능
있는 코미디 감독이다. 하루가 영원히 반복되는 '사랑의 블랙홀',
복제인간 모티브를 코미디에 접목한 '멀티플리시티'같은 대표작에
서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들을 재치있게 변주하며 관객을
즐겁게 했다. 신작 '애널라이즈 디스'(Analize This·28일 개봉)에
서 그는 갱영화 관습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코미디를 구사하는 묘기
를 부렸다. 위의 두 영화에 비하면 아이디어가 약하고 작품성이 좀
떨어지지만, 심심한 웃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입가를 떠나지 않도록
하는 재주는 여전하다.
뉴욕 마피아 보스 폴 비티(로버트 드니로)는 마피아 총회를 앞두
고 정신불안에 시달린다. 부하들은 자신들 차에 접촉사고를 냈던
정신과 의사 벤 소볼(빌리 크리스탈)을 폴에게 소개한다. 치료가
시작되면서 벤을 신뢰하게 된 폴은 사사건건 벤을 호출, 결국 대립
관계인 다른 마피아 조직과의 대결에 깊숙이 연루시킨다.
'애널라이즈 디스'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사실 곳곳에서 무리수를
범한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던 경험이 32년만에 급작스
럽게 신경쇠약을 불러냈다는 설정은 정신과 의사와 마피아 보스 사
이에서 유머를 끌어내기 위해 억지로 갖다붙인 듯한 인상이 짙다.
세기말 할리우드는 스릴러에서 코미디까지, 이야기에 긴장을 부여
하기 위해 프로이드적 모티브를 남발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주연배우들의 탁월한 코믹 연기는 다소 억지스런 이야기
를 큰 흠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단순 무식 과격한 갱 두목과
인내심 강하지만 소심한 정신과 의사가 빚는 갖가지 부조화의 재미
는 로버트 드니로와 빌리 크리스탈의 호연으로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됐다.
알 파치노와 더불어 '대부' 이후 갱영화의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
를 분점해온 드니로는 전작들 이미지를 끌어오거나 배반하며 웃음
을 안긴다. 오른손 집게 손가락으로 벤을 거듭 가리키며 만족을 표
시할 때의 너털웃음과, 같은 말을 반복하며 감정을 자연스레 전달
하는 대사처리법은 드니로가 왜 좋은 배우인지를 잘 말해준다. 재
능에 비해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는 빌리 크리스탈은 편
안한 표정연기와 재치있는 화술로 과장없이도 코미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크리스탈만큼 정확한 리듬으로 빠른 대사를 처리하
는 연기자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