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지도자도 드물다.
'철인 군주'에서 '독불장군'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집권
19년째로 아시아 최장수 지도자인 그는 오는 9월 조기총선을 통해 집
권연장을 꿈꾸고 있다. 반면 말레이시아를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비전 2020' 계획도 정상 궤도를 달리고 있다. 70대 중반에도 녹슬지
않은 마하티르 특유의 리더십을 살펴본다. ( 편집자 ).
동남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97년 7월,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는 그 탓을 '국제 금융계의 큰 손' 조지 소로스에게 돌렸다. 그러
자 세계는 일제히 마하티르를 비웃었다. 마하티르는 이에 굴하지 않았
다. 국제금융 투기세력을 비난하고 단기 환거래 규제를 촉구하고 나섰
다.
소로스로 상징되는 유태계-미국-서구의 자본가들과 언론은 마하티
르를 '반 정신병자'로 취급했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구원
자로 등장한 IMF(국제통화기금)에 대해서도 그는 맞섰다. 결국 마하티
르는 위기가 절정에 오른 98년9월 당시 IMF 주장과는 정반대되는 저금
리-경기부양-외환통제라는 '대반란'을 시도했다. 마하티르는 타임지
특별기고를 통해 "어떻게 정부는 손까딱하지 않고 시장 메카니즘에만
맡겨두란 말인가. 차라리 이단자가 돼 배척을 받더라도 나는 국민을
살리는 쪽으로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IMF,세계은행 등은 모두등
을 돌렸지만 신기하게도 말레이시아 경제는 회생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위기의 소용돌이속에서 서구 자본이 절대적인 권세를 부리
고 '아시아적인 것들'이 비판받을 때 유일하게 대항한 아시아 지도자
가 마하티르였다. 그는 "아시아 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경제는
전 세계로부터 찬양받았다.그런데 외환위기가 났다고 모든 것이 매도
당해야 하는가"라고 항변했다. 지난 2년간 금융대란속에서 일본, 중국
지도자도 자세를 낮췄지만 마하티르만은 좌충우돌,온갖 공격을 받고서
도 독불장군처럼 끝내 살아 남았다. 마하티르를 비판하는 쪽도 그의
배짱과 논리는 인정하게 됐다. 서구 언론도 밉쌀스럽기 짝이 없는 마
하티르 기사를 소홀히 취급하지 못한다.
'아시아의 대변인'으로 불리는 마하티르가 미국,영국 등 서방 강대
국에 맞선 일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지난 93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의 15개 회원국중 유일하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제
안한 시애틀 정상회담에 참석을 거부했다. "왜 아시아 경제를 미국이
주도하려고 하는가"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호주의 키팅 총리가 그를
"고집쟁이"라며 미국편을 들자, 마하티르는 "회담불참 문제는 초청한
미국과의 문제이지 호주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반박,결국 사과를
받아냈다.
그는 한국인같이 '욱'하는 기질도 있지만 시대를 앞서가고 강자의
꿍꿍이 속을 꿰뚫어 보는 뛰어난 통찰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동남아 위기 발생후 가장 먼저 소로스를 비롯한 환투기꾼을 "원
흉"이라고 지적한 것도 놀랄만한 직관이다. 소로스조차 이제는 "단기
자본의 무제한 흐름이 환란의 한 원인"이라고 수긍할 정도다. 선진국
이 목청높였던 우루과이라운드(UR),환경오염문제에 대해서도 마하티르
는 "빈국이 부국을 위해 언제까지 희생양이 돼야하는가"라며 맞받아쳤
다.
지난 96년 마닐라 APEC 정상회담에서 미국산 컴퓨터-통신장비들의
무관세 판매협정을 앞장서서 반대한 이가 마하티르였다. 지금도 "들어
라, 양키들아"라고 외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서방선진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로의 순응을 거부하고 독자적
길을 모색한다. 때문에 서방언론들은 그를 "이단아(heretic)"라고 부
른다. 혹자는 그를 "제3세계의 지도자"로 추켜세운다. 그러나 과거 제
3세계를 주도한 인물들이 대부분 공허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논리에
치우쳐 있었다면 마하티르는 경제발전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하
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