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은 인간을 외롭게 만드는 곳이었다. 바다에서 표류하는 조난
자의 마음처럼 모든 것을 애태워 그리게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다들 지독한 고독의 냄새를 풍기는지 몰랐다.
한 곳에 서 있으면 어디선가 유유히 사람이 나타나고는 했다. 말
을 타고 질주하다가도 인적이 포착되면 말머리를 돌려 찾아온다고
했다. 겉웃음을 보이는 건 위선이라 하여 처음에는 반가움도 내색
하지 않지만, 마음만 맞으면 의형제를 맺으려들고, 취하면 금방
문명이 몰아내버린 저 20세기 이전의 어휘들, '충성' '신의' '용
사'따위를 들먹인다고 했다.
그랬다. 그들의 언어는 지식과 외교
력의 연금술로 닦여 있지 않았다. 그들의 친화력은 저 영악한 상
품거래 사회의 전략과 전술로 무장돼 있지 않았다. 하늘을 외경하
고 벼락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성스러운 것(운명)을 깨끗한 것(과
학)보다 중시하는 사람들, 모든 행위의 동기를 손익계산이 아니라
길상과 불길에다 두는 사람들. 그들 속에 있으면 전라도의 장터에
서 순정을 배우던 내 인생의 여명기가 돌아올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입맛이 썼다. 전날 어느 분이 텔레지(휴양도시)의
바위산을 보고, 이쪽을 깎아내고 조금만 다듬으면 퍽 쓸 만한 휴
양지가 되겠다며, 산이름이 뭐죠? 하자, 산이 듣는 데서 신성한
이름을 입에 올리면 안된다고 했을 때 느꼈던 차이! 한 번은 저녁
에 양을 사려고 했다. 도축할 때 가슴에 칼자국을 내어 손으로 심
장을 뽑고 관절을 해체시킨다는 몽골인들의 야성에 홀려 보챘던
것이다. 그러나 주인은 완곡히 거절했다. 궂은 날 길도 어두운데
양을 보낼 수는 없다고, 양을 죽이는 동작도 심장을 뽑는 것이 아
니라 안락하게 죽도록 동맥을 끊어주는 행위이며, 관절을 해체시
키는 것도 동물의 뼈에 칼을 대는 '야만'을 저지르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인간을 대할 때 극치를 보였다. 유목민의
사회에서 거지는 없었다. 모든 나그네는 귀빈 대우를 받았다. 누
가 한 번 다녀가고 나면 언제 또 사람을 만날 지 기약이 없기 때
문에, 어느 곳의 풀이 좋고 물이 많으며 다른 소식은 더 없는지
묻고는 정성껏 숙식을 제공한다. 그 가난 속에서, 아직도 칭기스
칸 시대의 주식이었다는 야생 타르박(토끼보다 조금 큰 동물)을
사냥해 13세기식의 삶을 연명하면서도 자기 구역에 들어온 사람의
안녕을 지켜낸다.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 그런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황송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위안받아도 되는가? 그들의 역사가 얼마
를 더 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 장중한 대지의 운명을
버리고 그들이 저 유혹에 찬 사이버 공간으로 잠적해버리는 때가
몇 년 후에 올지 우리는 모른다. 그 탓이었다고 해두자. 어쩌면
지상의 마지막 유목민이 될지도 모르는 눈동자 두 개를 나는 진정
으로 가슴을 열고 받아들였다.
사랑하는 아내여! 당신은 이 풍경을 믿을 것인가?
때는 아침이었다. 호수에서 내가 머리를 감는 동안 먼 지평선에
서 말 두 필이 나타났다. 이웃집에서 손님(우리)을 보러 놀러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앞 사람은 아저씨였고 뒷 사람은, 맙소사! 걸음
마나 떼었을까 싶은 예쁜 여자 아이였다. 네 살짜리라고 소개되자,
누가 내 귀에 속삭였다.
"말이 세 발 자전거 같죠?"
하지만 성숙한 여인 같아서 볼에 입을 맞출 수 없었다. 만일 전
쟁이 일어나면 연락병 정도는 능히 할 것 같은 위용에 찬 인간 하
나. 아무리 말과 함께 산다지만 핏덩이 하나를 이토록 빨리 대지
의 주역으로 길러내는 사회가 있다는 것이 나는 믿어지지 않아서
그 아이의 등 뒤로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초원의 일생을 끝없이
상상했다.
온몸은 늘 적막 속에 있으리라. 바람과 가축을 제외하고는 어떤
움직임의 소리도 들을 수 없어서 귀는 언제나 비어 있고, 눈은 항
시 지평선으로 열려 풀잎 위를 밟고 가는 바람의 발자국이 몇 개
인지를 판별하리라. 그리고 저녁이면 귀를 땅에 대어 먼 곳에서
돌아오는 가족들의 발굽소리를 들으면서 얼굴 가득 안심하는 표정
을 짓고는 지상에서의 하루를 감사해 하리라. 아, 그 막막무제의
초원에서 네 살난 그녀가 말 위에 앉아 아스라히 멀어지는 노을
끝을 응시하면 누가 감히 구도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