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수해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수마가 할퀴고 간 경기도
연천군은 폭격을 받은 듯 처참했다.

시간당 최고 70mm, 31일 밤부터의 강우량만 570여mm.
단 하루만에 1060가구가 침수됐고, 도로는 진흙밭에 물웅덩이로 변했으며,
농경지는 오물로 뒤덮였다.

96년 가장자리 30m 가량이 유실됐던 연천댐은 이번 비로 다시 맞은편 제방의
흙더미가 40여m나 유실돼 가운데만 달랑 남은 괴이한 모습으로 주민들을
붕괴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1일 오후 연천군 차탄1리. 군청과 경찰서가 있는 중심가에 전기와 수도가
끊겨 괴괴한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소면리 주민 박점촌(여·62)씨는
『양동이로 쏟아붓는 것 같았다』며 몸서리를 쳤다. 인적이 끊긴 도로
곳곳에는 주민들이 꺼내다만 이불, 냉장고 같은 가재도구가 방치돼 긴박했던
「토요일밤의 공포」를 보여주고 있었다.

『순식간에 사람 키 한길을 넘는 물이 밀어닥쳤어요.』 전날 밤 9시 갑자기
불어난 물에 놀라 대피했다는 차탄4리 정원수퍼 주인 전향옥(여·35)씨는
가게 벽 3m 높이에 남아있는 얼룩을 가리켰다. 불청객이 찾아왔다 돌아간
흔적이었다.

연천군에 호우경보가 발령된 것은 지난 31일 오후 6시. 그로부터 불과 3시간
반 만에 긴박한 대피 방송이 울려퍼졌다. 손녀와 함께 금방 가슴팍까지
차오르는 물을 헤치고 나왔다는 차탄2리 주민 한원진(여·67)씨는 군청 3층
수재민 대피소에서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한씨가 집을 빠져나온 지
10여분 만에 연천읍 시가지는 서서히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연천군청은 1일 오후 집중호우로 인해 고정훈(43·전곡리), 박봉운(69·은대리)씨
등 2명이 한탄강 급류에 휘말려 실종됐고, 1060가구가 침수돼 모두 302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재민 대책을 세워야 할 군청과 경찰서가
수해를 입어 비상발전기로 겨우 가동시킨 백열등 밑에서 피해상황을 집계하던
한 군청직원은 『우리도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96년 수해 때에 이어 다시 붕기 위기를 맞은 연천댐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한 주민은 『연천댐이 생기면서 물길을 막아 결과적으로 큰 비만
오면 시가지가 물에 잠기게 된다』며 『여기서 생기는 전력도 연천군민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천군의 「부실행정」에 분노하는 목소리도 많다. 광산1리 유원지 입구에선
폭 2 가량의 하천에 설치된 교량은 멀쩡한 반면 인근 논 1000여평과 폭 3
가량의 도로 100여 가 자갈밭으로 변해버렸다. 주민 박모(33)씨는 『군청이
96년 홍수 때 유실된 교량을 보수하면서 홍수에 대비, 교량 폭을 넓히지 않고
원래대로만 급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