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영화는 어린이 세계로 자주 눈길을 둡니다. 8월초 비디오로 나
오는 '하얀 풍선' 역시 그렇습니다. 지폐를 하수구에 빠뜨리고서 일곱
살 소녀가 짓는 다양한 표정은 고운 아이들 심성을 그대로 전합니다.예
쁘기만 하던 아이들 세계는 정작 라스트신에선 '냉정한 세상'이 되고
말지요. 풍선팔이 소년이 지폐 꺼내기를 힘껏 돕지만, 소녀는 막상 지
폐를 손에 넣자 고맙다는 말도 없이 떠나버립니다.
소년 혼자 쓸쓸히 남긴 라스트는 아이들에 대한 통념이 얼마나 잘못
됐는지 보여줍니다. 천진하게만 보아내려 하지만, 사실 아이들 세계만
큼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 어디 있을까요.
'사랑이 다시 올 때'에서 샌드라 불럭이 아이를 때리자, 다른 아이
들은 오히려 싸움을 부추깁니다. 정지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싸
움으로 서열을 매기는 아이들 사회를 묘사하고요. 토드 솔론즈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는 어린이들이 무리 지으며 스스로를 지키려 쓰는 강력
한 무기가 따돌림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어린 시절은 세상이 정글임을
몸으로 배우는 시기입니다.
아이는 어른을 능가하는 악행도 저지릅니다. 닐 조던 '푸줏간 소년'
에선 소년이 동네 아주머니를 난자하지요. 스파이크 리 '클라커즈'에선
청부살인도 합니다. 아벨 페라라 '퓨너럴'은 후환을 없애려 살인하는
아이를 등장시킵니다. 알런 파커 '벅시 말론'은 갱스터로, 조지 로메로
'저주받은 마을'은 악의 씨앗으로 묘사하지요.
중세 풍속을 다룬 책들을 보면 부모가 관계하는 장면을 아이가 보는
게 일상적이었다지요. 자식을 이 끔찍한 세상에 편입시키고 싶지 않아
서 부모들은 자식이 나이들 때까지 '아이'로 묶어두려 하지만, 그들은
인위적 상한선 훨씬 아래에서 이미 어른이 돼있습니다. 이를테면 내면
과 외부, 의식과 존재, 자아와 세계가 통일성을 갖춘 낙원으로서 유년
기는 존재하지 않거나 짧게 사라져버립니다.
어린 시절이란 적대적 세상과 싸우는 시간입니다. 그때 무기는 위악
일 수도 있고, '돈 크라이 마미'나 '코리나 코리나'처럼 세상과 절연한
채웅크린 침묵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늘 나름대로 치열한 전투를 치
르는 셈입니다.
유미리는 신작 소설 '골드 러쉬'에서 마약과 강간, 아버지 살해까지
저지르는 열네살짜리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하지요. "공포를 극복하려면
어른이 되는 길밖에 없다"고요. 어쩌면 아이들의 공격적 본성은 가혹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나름의 생존법인지도 모릅니다. 둘러싼 세계와 어른
들이 그렇지 않은데, 어찌 아이들만 천진할 수 있겠습니까.
(*dj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