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그룹 매니저 K씨는 지난달 신문을 읽다가 분통을 터뜨렸다.
방송 특집인 줄 알고 출연을 약속한 공연 광고가 나왔는데, 알고
보니 백화점 판촉용 이벤트였다. 인기 여가수 새 앨범을 낸 음반
사는 한 TV 가요 프로그램에 나가 신곡을 발표했다가 경쟁 방송사
PD들이 "그쪽 하고 잘 해보라"며 출연 기회를 주지 않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특집 프로그램을 빌미로 기업 홍보성 이벤트에 가수들을 출연
시키거나, 스타급 가수들의 첫 컴백 무대를 유치하려고 과당 경쟁
을 벌여온 방송사들의 횡포에 대해 가요계가 '방송 출연 거부'라
는 배수진을 치며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음반 제작자들 모임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회장 엄용섭)는 28일
"총회에서 이 문제를 공식 논의, 가수와 음반사에게 피해를 주는
부당한 요구를 할 경우 회원사들이 해당 방송사의 모든 프로그램
출연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다음 주 중에 공중파와 케이블TV 방송사들에게 협조 공
문을 보내 회원사들의 이런 결의를 공식 통보할 예정이다. 가요계
가 방송사들의 잘못된 제작 관행에 대해 공개적으로 시정을 촉구
하며 집단 행동을 선언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가요계는 최근 공개방송을 가장한 기업 홍보 이벤트가 늘고 있
는데 대해 불만을 가져왔다. 한 케이블TV는 지난달 L백화점 협찬
을 받아 청소년 대상 특집 공개쇼를 열었다. 백화점측은 제작비를
대는 대신 매장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무료 입장권을 나눠주
는 '고객사은 행사'를 벌였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도 패스트푸드
체인점과 비슷한 특집 공개방송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방송사와 기업이 이익을 나눠먹는 틈새에서 가수들만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방송사들은 방송용 이벤트란 이유로 통상
출연료인 10만∼20만원만 준다. 인기 가수-그룹이 기업 행사에서
받는 출연료가 최소 수백만원에서 천만원대인 것과 비교하면 턱없
이 적은 액수다. 매니저 L씨는 "댄스 그룹 서너명이 무대에 한번
서려면 의상, 백댄서, 코디 등 경비만 100만∼150만원씩 든다"며
"가수들이 받을 돈을 방송사가 챙겨 공짜 프로그램을 만드는 셈"
이라고 꼬집었다.

MBC와 SBS 가요 프로그램 간의 지나친 시청률 경쟁도 가수와
음반사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매니저 K씨는 "화제가 될만한
스타급 가수가 새 판을 내고 어느 쪽에 먼저 출연하면 다른 방송
에선 스케줄을 주지 않는 식으로 암암리에 보복한다"고 주장했다.
전에도 가끔 있던 일이지만, 시청률 경쟁이 격화된 최근엔 견디
기 힘들만큼 심해졌다는 지적이다.

권승식 연예제작자협회 이사(스타뮤직 대표)는 "방송과의 원
만한 관계를 위해 참아오던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자는 목소리
가 높다"며 "구체적 사례가 발생하면 협회 차원에서 진상을 조사
해 공동 행동을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