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에서 왕조를 위협하는 큰 세력은 북방민족과 종교집단이었
다. 종교집단이 중국의 역사를 바꾼 대표적 예는 후한말 '황건적의 난
(184년)'이다.

황건적의 수령 장각은 종교적 색채를 띤 비밀결사체 '태평도'를 창
시, 병 치료법으로 민중속으로 접근했다. 태평도는 지금의 허베이(하북)
산둥(산동) 허난(하남) 장쑤(강소) 안후이(안휘)성 일대에서 신도 수십
만명을 확보하고 농민들의 호응까지 받았지만 실패로 끝났다.

18세기말 청조때 백련교는 미륵불 신앙과 복명(명조의 회복)을 내걸
고 세력을 확장했다. 말단 세리의 착취가 도화선이 돼 발발한 백련교도
의 난은 청조 팔기병의 끈질긴 공격으로 8년만에 진압됐지만 청조에 막
대한 손해를 입혔다.

과거시험에 여러번 낙방한 홍수전이 일으킨 청말 태평천국의 난 역
시 구약성서에 기초한 기독교를 나름대로 해석한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1851년 시작된 반란은 양쯔(양자)강 중하류 지대에 널리 세력을 떨치면
서 한때 600개의 도시를 점령했다.

이들 종교집단들의 반란에서 공통점은 부패한 기존 권력층에 대한 민
중들의 불만이 팽배했고, 농민들이 봉기에 호응해 주었다는 점이다.

요즘 중국에서는 법륜공에 대한 정부의 공격이 한창이다. 중국 정부
는 관영 매체들을 동원, 법륜공을 정치적 목적을 띤 종교집단으로 규정
하고, 창시자 리홍즈(이홍지)를 '특별한 인간'이 아닌 '보통인간'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법륜공이 종교적 이념을 갖추고, 병 치
료를 통해 민중속으로 접근했으며, 비밀조직 형태로 거대한 세력을 형
성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창시자가 미국에서 외세의 힘을 빌어 조
직을 지휘한다는 점도 비판한다.

일부에서는 중국 정부가 '새총을 쏘아야 할 곳에 대포를 쏘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조치는 일단 법륜공을 일반 대중으로부
터 고립시키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경제불황과 실업자 증가라는 불안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중국 정부의 고민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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