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가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 김광섭 `산'중에서.
`길이 없어 산길로 들어서니'.
누구의 외로움이 쌓여 산이 되었는가, 누구의 그리움이 그리 깊기
에 산봉우리로 솟아올랐는가. 산이여. 여름산은 진초록 옷소매 흔들
어 무더위와 삶에 지친 우리를 부른다.
길이 끝나 산길에 들어서니 문득 '산은 날아도 새 등이나 꽃잎 하
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가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하는 김광섭의 시 '산'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산
들과 잠시나마/ 고요히 지내려고/ 산에 오르면// 산들은 저희들끼리/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 한 점티끌도 안보이게/나를 지운다'(조태일,
'소멸')처럼 세속의 잡다한 풍경은 물론 '나'라는 존재까지도 그만
사라져버리게 한다.
그렇다. 산은 지상위의 온갖 것들, 고운 것 미운 것, 추한 것 아
름다운 것, 죽은 것 산 것을 모두 하나로 품어안으면서 자유로워라,
평등하라, 그리고 너그러이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타일러 준
다. 어서 대자연의 품에 달려와, 영원한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와 푹
쉬고 가라고 침묵으로 속삭인다.
그리고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가는 목숨/ 그믐달처럼 실어라 한다'(박
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고 타이르며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
아가라고 가르쳐준다. 그래서 산은 어쩌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성싶다'(정희성, '산')와 같이 그 자체로선 완벽한 존재자의 모습 또
는 신의 음성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어쩌랴, 산은 산대로 엄청난 풍요와 충만 가운데에서도 뿌
리깊은 고독과 허무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을. '벌목정정 이랬지. 아름
드리 큰 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소리 쩌르렁 돌아옴
직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묏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
라리 뼈를 저리우는데'(정지용, '장수산·1')에서처럼 산은 남들 다
잠든 밤이면 근원적인 허적과 함께 생리적인 고독에 홀로 신음하기도
한다.
그것이다! 온 세상 뭇 생명들을 차별상 없이 품안에 껴안고 함께
가려하니 산은 산대로 어찌 고단하고 힘겨움이 없으랴. 산이야말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기실 아무것도 제 것이 없는 것 아
닌가. 그래서 예로부터 '어진 자는 산에서 깨친다(인자요산)'라고 하
지 않았던가.
산은 모든 것을 허락하고 사랑하되 스스로를 다 비우고 사는 이름
없는 성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름 산에 들어 충만 속
에 가득 고인 텅빈 고요를 바라보면서 끝없이 용서하면서 겸허하게
살아야하는 삶의 크나큰 교훈을 배운다.
누가 소리높여 외치지 않아도
물은 물대로 흐르고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새겨서 다 듣는다 전달웅
-- 잠언, 물은 물대로.
`행운유수, 바람과 구름의 길을 따라'
지팡이 하나로 산길을 더듬어 가노라니 '십리도 반나절쯤 구경하
며 갈만도 하니/ 구름 속 오솔길이 이리도 그윽한 줄이야/ 시내따라
가노라니 물도다한 곳/ 꽃도 없는데 숲에서 풍겨오는 아, 산의 향기
여'라는 만해의 '약사암 가는 길에'가 떠오른다. '물도 다한 곳'이란
무엇일까. 도의 세계에서 말하는 바, 세속의 온갖 번뇌를 다 떨치고
자유자재로운 깨달음, 즉 무애의 경지에 도달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
겠는가? 그러고 보니 문득 '비슬산 구비길을 스님 돌아가는 걸까/ 나
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가투리가
나는걸까'라는 시 '오봉산 가는 길'에 담긴 승려시인 조오현의 간절
한 마음이 비로소 헤아려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땀흘리며 여름 산을 찾아 오르는 것일까? 스
님들은 왜 속세를 벗어나서 청산에 이름을 묻고 한 세상 구름처럼 살
아가는 것일까, 바로 그것이리라. 저 높은 산봉우리를 유유히 흘러가
는 흰구름의 생리,바람의 모습을 닮고자 하는 것이리라. 바로 '문득
돌아보니/ 나는 나는 흐르는 구름의 딸이요/ 떠도는 바람의 연인이어
라'(유안진, '자화상')처럼 가볍고 투명한 정신에의 길, 가벼운 자유
에의 길을 가고자 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사람은/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땅에서 살다가고/ 구름은 아무리 낮은 구름이라도/
하늘에서 살다/ 하늘에서 가는'(이생진, '산·12') 이치를 깨달으면
서도 하늘을 나르되 자국을 남기지 않는 새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
람과 구름의 생리를 배우려는 것이리라. 새삼 여름 산길을 가노라니
새와 바람과 구름의 길을 따라 행운유수 어디론가 가볍게 날아가고만
싶구나.
--나무는 숲을 이뤄 참 스승이 되고--.
여름 산에 나무숲 없다면 산을 어찌 산이라 하겠는가? 산에 들어
우리는 '일찌기/ 이름을 버린/ 무명용사나/ 무명성인들같은/ 나무들/
바위들'(김남조, '산에 와서')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깨닫는다.인
간 세상 사람의 하늘을 지탱하는 것은 산야에 들꽃같이 살아가는 어
질고 착한 이들이 아니겠는가하는 것을. 그러한 이름없는 사람의 들
꽃과 풀나무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들인가를 더욱 마음에
새기게 된다.
그래서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 긴 추위를 견디어내듯//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 우리도 그렇게 클 일이다'(오세영, '나무처럼')라는 나
무와 숲의 슬기와 이치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나무는 항상 당당해서
나무이고 순결해서 나무아니겠는가. 나무와 나무가 어울려 아름다운
숲을 이루듯이 너와 내가 만나 '참우리'를 이루고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어가야 함을 소중히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나무와 숲이 일러주는
교훈이리라. 그러니 나무가, 숲이 바로 우리 인생에 참 스승이 아니
고 무엇이겠는가?.
--계곡물에 눈과 귀를 씻으며--.
산이 높아야 골이 깊고, 골이 깊어야 물이 맑고 차다하지 않던가.
사람 또한 그러하리니 여름 산에 와서 '누가 소리높여 외치지 않아도/
물은 물대로 흐르고/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새겨서 다 듣는다// 누
가 소리높여 외치지 않아도/ 물 따라 산 따라/ 순리대로 흐르고/ 순
리대로 돌아가는/ 맑고푸른 소리'(전달웅, '잠언, 물은 물대로')를
들으며 새삼 사는 이치를 생각한다.
한 방울 이슬이 모이고, 샘물이 고여 계곡물은 흐르고, 강을 이루
며 마침내 바다에 이르른다. 우리는 이러한 물의 흐름 속에서 또 배
우리니, 바위를 뚫는 빗방울의 견고한 의지와 역경으로서 바위에 부
딪쳐 바위를 감돌며 흐르는 부드러운 포용력을 여름 산에 와서 보고
깨닫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여름 산에 와서 며칠 산초록물에 몸을 담그고 계곡
푸른 물에 눈과 귀를 씻노라니 비로소 '산이 지나가다가 잠깐/ 물가
에 앉아 귀를 씻는다// 그 아래 엎드려 물을 마시니/ 내 잎에서 향기
가'(이성선, 산시)나는구나.
그러고 보니 산봉우리가 떠받들고 있는 푸른 하늘과 저 구름이,내
몸을 비추고 있는 맑은 계곡물이 바로 내가 오래 찾아 헤매던 내 마
음 우주의 거울이구나. 멀리 산봉우리 너머 불어오는 솔바람 소리에
내 마음거울을 맑게닦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