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드스톡에 있었는가?".
이것은 60년대 말 젊은이들이 처음 만났을 때 서로 나눈 인삿말이었
다. 그것은 단순히 우드스톡에서 열렸던 록 페스티벌에 참가했었느냐는
물음이 아니었다. 당신은 반전 운동을 하는 플라워 피플인가, 당신은 민
권운동을 하는 블랙 팬더인가, 당신은 스퀘어(샌님들)에 저항하는 히피
인가, 라는 젊은이의 신분 확인용 암호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전쟁
대신 꽃을 사랑했고 출세 대신 청바지와 통기타를 좋아했으며 미술관 그
림보다 술집이나 자동차에 칠한 사이키델릭 아트를 좋아했다. 로작크 교
수는 일체의 기 성 문화를 거부하는 이 젊은이들을 반문화(카운터 컬쳐)
운동이라고 불렀다. (이어녕 이화여대 석좌 교수).
뉴욕주 우드스톡의 한 농장. 미친듯이 내뿜는 전자기타와 드럼, 절규
하듯 내질러대는 록의 선율에 실려 50만명의 젊은이들이 자신을 내던졌
다. 그레이트풀 데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등 '역사'로 남은
록커들이 잇달아 무대에 오를 때마다 윗통을 벗어부친 건 남자들 뿐이
아니었다. 노래에 취하고 대마초에 취해 가슴을 다 드러내고 춤을 추어
댄 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머리, 길게 땋아
꽃을 꽂은 모습에 청바지, 낡은 면 티셔츠, 맨발이 유니폼이나 마찬가지
였다. 마실 물도 없고먹을 것도 떨어졌다. 대회장 주변 32㎞는 자동차로
꽉 메워졌고 폭우가 쏟아졌지만, 사흘동안 계속된 축제 기간동안 폭력
사고는 한건도 없었다.
베트남전 반대 운동은 거리와 대학가의 시위를 넘어, 시대의 문화가
되었다. 폭력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은 기성 세대의 가치와 문화를 모두
부정했다.
68년 학생 시위는 유럽 뿐 아니라 미국 대륙을 휩쓴 거대한 힘이었다
인종 차별주의에 도전하는 민권 운동과 폭력적인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은 정치적 입장 차에도 불구하고 기존 권위에 맞선다는 원초적 동질
성을 공유했다.
미니 스커트와 청바지, 천연 염색으로 물들인 티셔츠는 '평화'를 요
구하는 젊은이들 언어였다. 최대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욕구가 이들 옷
차림에 그대로 드러났다. 여자들은 가짜 속눈썹을 떼고 브래지어를 풀어
불태워버렸고 남자들은 면도를 하지 않았다. 텁수룩한 머리, 무성한 턱
수염에 맨발 샌들은 히피의 제복이었다.
대부분 중산층 가정 출신이었던 히피들은 자기를 키워내고 미국을 지
탱해온 엄격한 청교도 윤리와 거기서 나온 위선을 거부했다. 자유로운
연애와 성관계, 정착하지 않고 떠도는 삶, 현실을 잊게하는 약물로 이들
은 스스로의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세계를 놀라게한 경쾌한 미니는 오랫
동안 감춰져 있던 여성의 다리를 거리낌없이 드러내보였다. 짧은 치마
덕에 전에 없이 자유로와진 발걸음과 노출은 성에 대한 금기에 자연스레
도전하는 반문화의 상징이었다.
지극히 미국적인 맥락에서 태어난 이들 반문화는 그러나 세계 언어로
확대됐다. 장발과 청바지, 사이키델릭 사운드는 유럽과 아시아에도 상륙,
정치적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미국식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전파한다
청바지와 통기타, 생맥주로 상징되는 70년대 한국 '청년 문화'의 싹은
태평양 건너 날아온 씨앗이 정치적 억압 하에 있던 한국 토양에서 틔워
낸 갸냘픈 초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