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팅 힐'은 할리우드 스타와 평범한 사람의 사랑을 통해 로맨틱 코
미디 환상을 극대화한 작품입니다. 어찌 보면 이 사랑은 스타와 대중
관계에 관한 비유로도 읽힙니다.

먼저 손 뻗치는 건 언제나 스타입니다. '노팅 힐'에서 둘 관계는 애
너가 윌리엄의 책방에 들어서면서 시작하지요. 얼떨하던 윌리엄이 열병
에 빠지는 것도 애너가 갑자기 키스해온 다음이고요. 대중은 스타의 기
습을 받고 사랑에 빠집니다.

이후 주도권을 쥐는 건 늘 스타입니다. 팬들은 스타가 다가오면 열
광하고, 멀어지면 한숨 쉽니다. '노팅 힐'의 사랑도 애너 뜻대로 진행
됩니다. 애너가 전화를 걸어와야 이야기할 수 있고, 장소를 지정해줘야
짧은 데이트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루돌프 발렌티노나 존 레넌이 죽었
을때 따라 죽었던 사람들처럼, 스타에 대한 팬 사랑은 피학적이기까지
합니다. 소비자 힘을 과장하고 부추기는 미디어 사탕발림과 달리, 팬이
스타를 만든다기보다 스타가 팬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막강한 스타의 힘은 어디서 비롯할까요. 그건 혹시 편재에서 나오는
게 아닐런지요. 윌리엄은 이별을 결심하지만, 헤어지자마자 올라탄 버
스에서 애너의 신작 영화 광고판을 보지요. 그는 몇차례 단념하려 하지
만, 그때마다 수많은 광고판과 TV 출연작과 타블로이드 신문에서 그녀
모습을 확인하곤 합니다.

오래된 연인들이 이별을 선언하고도 재회를 거듭하는 건 함께 한 경
험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런 경험들은 잊힌 듯하다가도 추억이 얽힌
시간과 공간의 그물에 걸릴 때마다 되살아나 애틋한 감정을 불러냅니다.
헤어지면 우연히 마주치기 쉽지 않은 평범한 연인들도 그럴진대, 스타
로부터 벗어나기가 쉽겠습니까.

현대에서 스타는 매체라는 제단에 수시로 강림하며 무소부재를 과시
하는 신같은 존재입니다. 미디어는 스타 위력을 극대화했고, 대중은 더
욱등을 돌리기 어렵습니다. 우린 스타를 싫어할 순 있어도 무시할 수는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이 끝내 수동적 존재로만 남아있을까요. '노팅 힐'에서
결국 재회를 결정하는 건 윌리엄입니다. 그는 떠나는 애너를 찾아나서
이거짓말같은 사랑을 완성하지요. 스타는 빛을 뿜지만, 그 빛의 가치와
영속성을 결정하는 건 대중이라는 반사체입니다. 애너와의 사랑을 되새
기며 재회를 결심한 윌리엄처럼, 대중은 결정적 순간 스타의 의미가 무
엇이었는지 반추하면서 끝내 우위에 서게 됩니다.

(*dj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