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그룹 '허벅지'에겐 파격이란 말이 어울린다. 데뷔작 1집이 그랬다
매저키즘(피학대 음란증)적 가사, 바이올린을 주선율로 삼은 음악, 끈적
한 공연 퍼포먼스. 어느 하나 주류 가요 관행과 타협할 수 없는 파격이
었다. 때문에 1집 전곡이 방송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그렇듯 사건을
몰고다니던 그들이 변신했다.
여름비를 테마로 4곡을 수록한 1.5집은 장마철의 촉촉한 감상과 차분
한 사색에 젖어있다. 첫곡 '장마오면'과 둘째곡 '우산'은 비내리는 서울
풍경과 젊은날 초상을 교차시킨 2부작. 셋째곡 '남십자성'과 넷째곡 '아
르헨티나'는 70년대 복고풍 록과 이국적 제3세계 사운드를 넘나들며 태
양빛 가득한 신세계를 그렸다.
돌아보면 '허벅지' 1집은 매너리즘에 찌든 주류 가요를 아마추어리즘
의 분방한 에너지로 야유한 작품이다. 반면, 1.5집은 음악적 순수를 향
한 비주류의 조용한 자기 성찰을 암시한다. 이런 변화는 인디 계열 뮤지
션들이 잠시 '전투'를 접고 저마다의 음악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몰두하
고 있는 최근 흐름을 반영한다.
주목할 점은 또 있다. '허벅지' 1.5집은 국내 독립 음반사들이 합작으
로 낸 첫 음반이다. '십만원 비디오영화제' '미메시스' 등 비주류 영상
계대표선수들과 손잡고 뮤직비디오도 찍기로 했다. 여러모로 올 여름 장
마철에 꼭들어보고 넘어가기를 추천하는 앨범이다.
( 김종휘 가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