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죄송해요. 하지만 이제 자신이 생겼어요. 곧 우승해서
우승컵을 드릴게요.".
'수퍼땅콩' 김미현(22). 애써 톤을 높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5일 오전(한국시각) 미국 실배니아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제이미파크로거클래식. 연장전
끝에 대회 2연패를 달성한 박세리(22)가 영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 '챔피언의 그늘에 가린 2인자' 김미현도 박수를 보내
고 있었다.
"마지막홀서 2m짜리 퍼팅만 들어갔어도 연장전에 나갔을 텐
데….".
1타차로 공동 7위. 진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성적이었
다.
1m53. 현역 미LPGA선수중 앨리슨 니콜라스(1m52)에 이어 두번
째로 작은 김미현의 미국투어 생활은 힘겹기 그지 없었다. 작년
말 미국에온 후 아버지 김정길(52)씨가 운전하는 중고 밴을 타고
대회장을 찾아 밤새 미국 전역을 누비고 다닌 고행의 연속. 끝도
없이 달리다 배가 고프면 차를 세워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스폰서마저 없어 돈도 자신이 투어에 참가해 버는 게 전부
였다.
"저 때문에 유랑생활 하시는 부모님이 걱정이지 저는 괜찮아
요. '맨 몸'으로 부딪치다 보니 처음엔 '윙윙'거리던 영어도 이
젠 제법 알아듣게 됐는걸요.".
김미현은 효녀였다. 고3때 사업실패로 집안이 흔들리자 상심
한 부모를 위안할 길을 찾다 골프에 매달렸다. 대학을 중퇴하고
프로에 뛰어들어 97년과 98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다. 국내 정상.
그러나 라이벌이던 박세리는 세계무대에서 정상에 올랐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자신감은 곧바로 98년
10월 열린 미LPGA 최종퀄리파잉스쿨 통과로 이어졌다. 본격 미국
무대 진출을 앞둔 작년 말 김미현은 '살찌기 작전'에 들어갔다.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체중을 무려 8㎏이나 불렸다
같은 또래 '숙녀'들처럼 몸매에 신경쓰는 것은 김미현에겐 사치
였다.
올해 18개 대회 출전에 4번의 '톱10' 진입. 빠른 적응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발목을 잡던 '돈' 문제도 해결됐다. 중견기업
인 '한별 텔레콤'이 2년간 50만달러를 지원해주겠다고 나섰다.
한주동안 휴식을 취하고 다시 4개 대회에 연속 도전하는 김미
현. 이제 그녀가 '껍질'을 깨고 또 다른 새 여왕으로 탄생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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