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모 방송사에서 기획하는 독서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 요청을 받
았다. 나는 프랑스 F2 방송사의 '아포스트로프' 정도의 정규 프로라면 나
가겠다고 농담하며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사양했다. 이 프로는 독서 전
문 방송프로그램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책을 읽고 사회자, 저자, 토론자
들이 매주 모여 심도있게 토론하는 프로이다. 이런 지상파 방송 프로가
황금시간대에 편성되어있고 시청률도 높다는 것은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신문이나 잡지같은 인쇄매채만이 책을 다
루고 있다.

어떤 책을 골라 읽어야 할까. 아무거나 읽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베스
트셀러라고 모두가 양서는 아니다. 먹거리, 볼거리에 관한 책은 많아도
읽을거리에 관한 책은 별로 없다. 독서에도 길라잡이가 필요하다. 선진국
에는 전문 학술서적을 소개하고 서평하는 월간 잡지도 있다. 학술지와 계
간지의 몇 쪽만을 채울 뿐인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
런 상황에서 최근에 발간된 책들이 눈에 띈다.

'스무살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하늘연못 간)은 삼사십대 작
가, 교수 등 117인이 쓴 자신의 독서 체험기이다. 필진 각자는 자기 인생
에 있어서 전환기를 마련해 준 대여섯권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단순한
다이제스트형 가이드북은 아니다. 책이 왜, 그리고 어떻게 감동을 주는지
생생한 독서 체험을 통해 가르쳐 주는 책이다. '미메시스'(열린 책들 간)
는 번역서를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은 기존 번역서들을 거의 총망라한
듯하다. 그러나 좀 산만한 게 흠이다. 매년 발간할 예정이라고 하니 보다
엄선하여 책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학창시절 나는 낑낑대며 읽어도 이해
가 잘 안되는 고전을 놓고 내 나쁜 머리만 탓한 적이 있었다. 커서 알고
보니 그 책은 번역이 엉망이었다. 번역상태까지 면밀히 검토한 후에 책을
추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난 달에 창간된 '책 읽는 사람들'(도서출판
E.C.P. 간)은 아담한 사이즈와 깔끔한 편집이 돋보이는 월간 도서 전문지
이다. 이 잡지는 몇 편의 수필과 함께 매달 20여권의 볼만한 책들을 소개
하고 있다. 매달 책을 선정하는 기준이 좀 모호하지만, 독자가 비교적 큰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요즈음 문화관광부에선 '읽으면 행복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
국민책읽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운동 공화국인가. 무슨 운
동이 그리 많은가. 독서는 운동이 아니라 일상생활이어야 한다. 일상문화
가 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독서에 관한 책이나 잡지도 많이 나오고 방
송프로그램도 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현란한 베스트셀러 광고에 독자들의
판단이 흐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매달 엄청난 양의 책들이 쏟아져 나
온다. 종이에 활자가 박혀있다고 모두 책은 아니다. 옥석을 가리는 일이
중요하다.

(고려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