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들어가면 29세로 생을 마감한 시인 기형도가 살아있다. 그
의 시를 사랑하는 네티즌들이 있어 그들 가슴 속에 살아있는 시인을 만
날 수 있다.
'한때 기형도를 신체의 일부로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뭐랄까… 삶의
방향을 상실했던 그 순간! 우연히 손에 쥔 기형도는 항상 죽음과 절망
을 속삭이며 알 수 없는 탄력을 주더군요.'(chonbuk.ac.kr).
'기형도 시인은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스
크랩할 만큼 기분이 좋았는데,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이렇게 여
기저기 찾아다닙니다.'(sysiver@hanmail.com).
죽은 시인을 대신해서 열성 독자들이 개설한 기형도 홈페이지(http://
rtlink.flotec.co.kr 혹은 http://myhome.netsgo.com/elfwin)에 들른 네
티즌들이 방명록에 남기고 간 글들이다.
이처럼 독자들이 시인-소설가를 대신해서 만든 인터넷 문학 클럽이
잇따라 생기고 있다. 일부 젊은 문인이 직접 만든 개인 홈페이지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 열성 독자들이 주체가 된 한국 문인 홈페이지들이
최근들어 활발하게 개설되고 있는 것.
지난 97년 34세로 세상을 뜬 소설가 김소진을 위한 홈페이지(http://
myhome.shinbiro.com/∼f355f1)도 최근 등장했고, 현재 활동 중인 시인
이성복 황지우씨, 소설가 이문열 성석제 한강씨 등의 열성 팬들도 홈페
이지를 개설했다. '야후! 코리아'에 들어가서 관심있는 문인의 이름을
치면 된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석제 작품을 무지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반갑
습니다. 대부분 제가 읽은 것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무지 반
갑네요.'(hahamisun@hanmail.net).
'황지우 시인의 사이트는 있는데 왜 이성복 시인 것이 없을까 하며
항상 기다려 왔는데, 결국은 만들어졌군요. 좀더 풍부한 자료를 기대해
봅니다.'(j2415@hitel.net).
기형도 홈페이지 2개는 그가 남긴 시와 산문들을 비롯, 사진과 초상
화, 평론가들의 '기형도'론 모음, 독자들 방명록 등으로 꾸며졌다. 그
중 하나는 30대 컴퓨터 프로그래머 박병일씨가 만들었다. 그는 "10대
아이들처럼 팬클럽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고요, 그저 시인의 시를 읽을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개설 이유를 밝혔다.
김소진을 위한 홈페이지는 일상 생활에서 사라진 순우리말을 풍부하
게 활용한 작가의 소설 이해를 돕기 위해 '김소진 소설어 사전'을 마련
해 이채를 띤다. 가령 '가량맞다'(조촐하지 못하여 격에 맞지 않은 데
가 있다)는 말을 풀이하면서 소설 '임존성 가는 길'에 나온다고 자세하
게 정리했다. 이 사이트 운영자는 소설가 이효석, 시인 신동엽 등 문학
사의 요절 문인들 자리도 만들 예정이다.
이같은 인터넷 문학 클럽은 열성 팬들끼리 서로 독후감과 정보를 교
환하는 열린 마당이란 점에서 디지털 시대적 문학 소통의 장을 제공한
다. 또한 작가에 대한 평론과 문예지 인터뷰, 신문 기사 등을 최대한
모은 곳도 있어 해당 문인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인 전문 연구자들에게
도 환영받는다. 문제가 있다면, 저자와 출판사 동의를 얻지 않은 채 현
재 서점에 나와있는 작품집의 전문을 올린 경우가 있다는 것.
하지만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펴낸 문학과 지성사의 채
호기 편집주간은 "독자들이 취미 활동 차원에서 비영리로 운영하고 있
으므로 현재로선 저작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