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1996)
감독 그레고리 호블릿/주연 리처드 기어, 에드워드 노튼/출시 CIC.
법정은 미국 영화가 즐겨 대단원의 커튼을 닫는 장소다. 보통 사람
열두명이 내릴 평결을 놓고 엘리트들의 화려한 논박이 오가고, 보통 사
람의 진실이 자주 개가를 올린다. 법정은 종종 헝클어진 플롯을 어찌할
바모르는 영화들에게 편리한 해결책이 돼주기도 한다. 마치 고대 그리
스 연극에 별안간 등장해 갈등을 척척 정리해주던 신처럼.
현대를 살기란 삶을 자꾸 구획짓는 일이 돼버렸다. 선악에 대한 명
상이 점차 종교와 법의 전유물이 되면서, 재판은 흥미진진한 실내극으
로 변했다.
은폐된 편견들이 드잡이를 벌이고, 살인에 이른 치정과 치정에 뒤엉
킨 정치가 벌거벗는 광경을 달리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법정 드라마
관객은 도청하는 기분으로 퍼즐을 풀듯 영화와 마주앉는다.
90년대 할리우드 법정 드라마를 이끄는 캐릭터는 존 그리샴 소설 풍
의 행동파 변호사들. 윌리엄 디엘이 쓴 소설을 각색한 '프라이멀 피어'
의 변호사마틴 베일도 그렇다. 대주교가 살해되고 10대 성가대원이 피
칠갑한 채 체포된다. 사건의 선정성을 노려 변호를 자청한 야심가 마틴
은 험로에 접어든다. 시카고 권력층 비리가 끌려나오고 대주교의 성스
럽지못한 비밀도 물위로 떠오른다. 심약한 용의자가 이중인격을 노출하
면서 법정은 더욱 혼미해진다.
두 얼굴을 가진 것은 용의자뿐이 아니다. 명망높은 인사들이 치부를
드러내고, 고작해야 '진실의 환상을 배심에 심어주는' 것이 자기 일이
라며 냉소하던 마틴은 숨은 이상주의를 내비친다. 영화는 사건 진상만
큼이나 사건에 연루된 인간들의 흔들림을 철저히 해부한다.
마틴의 승소에 안도하던 관객은 마지막 교차로에서 배신당한다. 아
마 이 영화의 '근원적 공포'는 선한 의지로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 다다를 수 없다는 열패감일지도 모른다. 최후 판결문이 또박또박
낭독되는 법정드라마에서 조차 '죄와 벌'은 난해한 문제다.
( 김혜리·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