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이 겪었던 고난의 100년을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21세기를
준비하는 민족사 재정리 밀레니엄 행사가 시작됐다. 일제 침략과 식
민지수탈, 6·25, 근대화 등 민족 고난사의 한복판에서 조국을 찾고
지키고 부흥시키는데 힘을 보태다 뿔뿔이 외국으로 흩어졌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경험을 얘기한다. 외교통상부산하 '재외동포재단'이
14일부터 5박6일간 갖는 '역사속의 한국인모국방문' 행사를 통해서
다. 행사 참석 재외동포는 러시아 중국 멕시코 등 12개국에서 온
'민족사의 산증인' 22명. 독립유공자 후손, 북한체제반대 망명 과학
자,파독광부-간호사, 반공포로, 강제징용자, 멕시코이민 후손, 독립
운동가 등이다. (편집자).
●독립투사딸 김효숙씨.
대한민국 임시정부 창설요원이자 국무위원을 역임한 김붕준 선생
의 딸 김효숙(84)씨는 어릴 때부터 임정 요인들의 활약상을 보며 자
라온 독립운동의 산증인.
"백범과 도산 선생 집안과 이웃으로 지냈어요. 독립운동 하신 분
뿐 아니라 그 식구들의 고충도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한달이 멀다하고 이사 다녀야 했고, 집세를 못내 쫓겨
다닌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김씨 집안은 신학문을 했던 아버지가 도산 선생 등의 감화를 받
아 독립운동에 뛰어들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우선 아버지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1919년 3·1 만세운동이 터
지자, 아버지가 상해로 피신해 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때부터 국
내에 남아있던 김씨 집은 독립운동자금 중간기지 역할을 하게 됐다.
"국내에서 모은 성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상해에서 온 요원에게
전달하는 것이 저와 어머니의 임무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마저 일본 경찰에 발각돼 가족은 상해로 이주했다.
1930년대 초인 그때 이봉창 선생의 일본 천황 폭탄투척 의거, 윤
봉길 의사의 홍쿠공원 도시락 폭탄 투척 의거가 터졌다. 김씨는 "거
사 며칠전 그분들이 김구 선생과 사진을 찍으며 뜨거운 포옹을 나누
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했다.
독립운동중 만나 결혼한 남편 송면수씨는 6·25때 전사해, 김씨
는 현재 딸과 함께 미국 LA에 살고 있다.
김씨는 "아이들이 조국을 위해 몸과 가족까지 희생한 대가가 뭐
냐고 물어올때 가장 곤혹스럽다"며 "아버님이 꿈에 그리던 통일 조
국을 봐야 눈을 감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