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 날이 얼마겠어요. 다음에 올땐 남북이 하나된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박일(87)씨는 37년 카자흐스탄 이주후 87년까지 카자흐스탄 종합대
철학교수로 재직했던 인텔리. 1930년 연해주 고려사범전문을 졸업하고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철학과를 마쳤다.

1946년 12월 박씨는 "북한에 가 김일성과 북조선군에게 마르크스-레
닌 사상을 교육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조선말로 철학을 가르칠 사람이
박씨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평양대학(이후 김일성 종합
대학) 부총장에 임명됐다. 북한에 머무르는 2년 동안 박씨는 김일성의
사상 스승이었다.

"김일성은 가짜입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제게 김일성 열전을 쓰라
더군요. 노트 4권 분량으로 작업했지만 학자의 양심으로 책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소련 공산당과 김일성은 48년 3월 그를 카자흐스탄으로
내쫓았다. 박씨는 이후 다시는 북한 땅을 밟지 못했다.

"국가와 사회, 문화, 철학 모든 분야에서 거짓말로 세워진 나라가
북한입니다. 인민을 속이고 탄압하는 정부는 민족 전체를 위해 사라져
야 합니다." 박씨는 유달리 북한 비판에 열을 올렸다.

박씨는 1912년 러시아 연해주 감자밭골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
다. 부친은 김좌진 장군 부대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했던 독립투사. 박씨
는 아버지가 가르쳐준 독립군 노래 '망향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56∼70년 고려 시조 500여편을 러시아어로 번역, 3권의 번역
시집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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