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비정들의 서해 영해 침범 사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원칙에
입각해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는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과
군 관계자들은 "물론 그렇다"고 답한다.
하지만 북한이 우리 영해를 훼손하고 있는 일이 벌써 1주일을 넘
고 있다.
북한은 한차례 우리의 밀어붙이기에 주춤하기는 했지만, 곧바로
'화력 타격' 운운의 협박 성명으로 전의를 가다듬고는 매일 우리 영
해를 넘나들고 있다. "북방 한계선을 단호히 지킬 것"이라는 정부의
각오를 비웃고 있는 형국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의 의도는 일정
부분성과를 거두고 있기도하다. 사건 발생 해역을 남북간의 '분쟁 해
역'으로 기정 사실화하고 있는것이다.
상황은 미묘하다. 군사적 충돌은 피하면서도 북한의 무력 도발은
용서치 말아야 한다는, 두가지 상충된 요구를 실현시켜야 하는 데 정
부의 고민이 있다. 그만큼 정부의 의지와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초반 단계에서 상황을 장악하는 데 미흡했다
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단호한 결의를 보여주지 못했고, 힘을 과시
하지도 못했다.
정부가 초반에 북한의 의도를 단순히 '꽃게 잡이' 때문으로 파악
하는가 하면, '영해 침범' 대신 '월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의
미온적반응을 보인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우리의 의지를 오판하게 만
들 수있었다.
남북관계 전문가인 이동복(자민련) 의원은 "서해안 사태는 그동안
해마다 25회 남짓 발생했으나 역대 정부는 한번도 이것을 꽃게 잡이
와 연계시키지 않았으며 명백한 주권수역 침범으로 규정했다"고 말했
다.
정부는 또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여론을 한곳으로 결집시키고 주
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여론에 떠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언
론의 관련 보도가 가급적 조용하기를 바라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국가안보의 위해 요인이 발생했을 때 국민적 힘을 결집시키는 것은
정부의 가장 초보적 의무이자 상대방에 대한 가장 강력한 압력 수단
이다.
군사력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정치-경제-외교적 힘을 동
원하거 나과시하는 것이 순서일텐데도 정부는 이를 처음부터 포기하
는 듯한 인상을주었다. 금강산 관광이나 대북 비료 지원, 남북 차관
급회담 등에 영향을 줄까 우려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정부였다. 이는 북한에 어떤도발을 감행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하게 할 수도 있다. 잠수정 침투 사건 등에 대한 우리 정부의
미온적 대응이 이번 서해안 침범을 가능케 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
온다.
남북한 함정이 충돌하고 있는 바로 그 해역 한편에서, 무상 지원
비료를 실은 한국 배가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는 장면을 반드시 남북
관계의 '선진화'로 이해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
다. 남북 교류가 진전될수록 북한의 대남자세가 부드러워지기보다 오
히려 우리의 대북 대응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
게 한다.
국가 안보 위기 관리의 최고논의체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이
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전체회의를 한번도 열지 않은 사실도 정부의
대응태세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NSC 상임위마저도 정례 개최일(매
주 목요일)에야 첫회의를 가졌다.
국제적으로 냉전 체제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것이
국경 분쟁이다. 국경 분쟁은 한번 일어나면 폭발성이 강한 특징을 갖
는다. 이를 방지하는 첩경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국경은 사수한
다"는 국가적 의지를상대방에게 명확히 심어주는 것이다. 군사력 사
용은 자제하되 이같은 의지를 단호하게 보여주는 데 정부의 역량과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