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국군은 강강약약 전술로 대응해
왔다. 북측이 강하게 나오면 강하게, 약하게 나오면 약하게 대
처했다. 북측의 서해 해상도발은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시
키고 저강도 분쟁으로 정치-군사적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휴전 협정후 약 20년동안 NLL을 묵시적으로 지켜왔
고, 북방한계선에 대해 어떤 이의 제기를 한적이 없엇다. 해군
력이 남한에 비해 열세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73년부터 상황
이 달라졌다.북한은 체코제 스틱스 미사일을 탑재한 소련의 미
사일 보트 '오사' '코마'를 도입해 해군력이 남한을 압도하게
되자 NLL을침범하기 시작했다. NLL을 무력화하기 위해 오사-코
마와 무장 어선이 떼를 지어 NLL을 침범했다. 당시 우리 해군
은 5인치 포로 무장한 미군의 퇴역 함정이 주축을 이뤄 북측의
위협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도발에는 과감한 응징을
했다. 75년 2월에는 공해상에서 기관총으로 무장한 북한 어선
10척이 NLL을 침범하자, 우리 구축함 서울함(DD-92)이 긴급 출
동해 북한 무장어선 한 척을 함수로 들이받아 격침시켰다.
북한은 어선이 격침되자 '오사' '코마'등 40척이 대오를 이
뤄 전속력으로 남하를 시도했고, 공중에서는 미그 전투기들이
위협 비행을 하는 등 전쟁 일보직전의 긴장을 조성하기도 했
다. 당시 미그기는 34회에 걸쳐 NLL을 침범하여 무력시위를 했
으며, 그중 6대는 NLL남방 45마일까지 남하했다. 북한의 미사
일 보트 '오사' '코마'에 혼이 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학생들
의 성금을 모아 코리아 타코마에서 한국형 고속정을 건조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북한측 도발은 96년 NLL 침범을 시작으로
재개됐다. 북측의 NLL 침범은 주로 대청도와 연평도간 해역서
발생했다. 96년에는 한햇동안 13차례나 침범했고, 97년 6월에
는 사상 최초로 남-북한 함포간 포격전이 발생했다. 그러나 국
군은 초기 강력한 대응으로 북한 경비정을 몰아냈다.
당시 역시 지금과 비슷한 시기에 경비정 1척과 어선 9척이
NLL을 침범 대치중이었다. 북한 경비정이 돌연 해군 고속정 후
미에 함포 3발을 선제 발사하자, 국군은 2발의 함포 사격으로
응사하며 위력 항해를 시도, 북한 경비정을 NLL 밖으로 완전히
밀어냈었다. .
◇서해 5도 주변해역 북한의 주요 도발 일지.
▲56.11.7 서해 상공서 아군기 2대 습격
▲57.5.16 북 선박, 연평도서 어선 납북
▲60.8.24 연평도 근해 북 무장선 침범, 포격전 끝에 격침시킴
▲62.12.23 연평도서 북함정과 교전, 우리 장병 6명 사상
▲65.10.29 강화 앞바다 북함정, 어부 109명 납치.
▲70.6.5 연평도 서북방서 해군 방송선 납북(승무원 20명)
▲71.1.6 서해안서 북경비정 어선에 포격 1척 침몰
▲72.2.4 대청도 서쪽 해상 북 함정, 우리 어선 1척 격침, 5척 납북
▲73.12.7∼12.18 연평,대청,백령 근해 북한 함정-경비정
11차례 10여척 침범
▲74.2.15 백령도 서쪽 공해 북함정 어선 2척 납북.
▲75.2.26 북선박 10척, 백령도 서남해상 침범, 북 함정-미그기도 월경
▲81.8.12 북 미그21기 백령도 침범
▲81.8.26 북, 미군 정찰기 SR 71기에 미사일 공격
▲85.2.5 백령도 공해상 어선 2척 납북
▲91.4.13 북 경비정 1척 백령도 NLL 침범.
▲93.6.21 북 경비정 1척 백령도 동북방 약 4㎞ 침범
▲96.4.19∼8.27 북 어뢰정-경비정 등 96년 한해 동안 서해 NLL
13차례 침범
▲97.5.29 북 경비정 1척 백령도 서북방 5.6㎞ NLL침범
▲97.6.5 북경비정 1척 백령도 서쪽 해상 12.9㎞ NLL침범,
함포 3발 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