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에 사실상 합의를 이루어놓고 있는 차관급 당국 회담이 실현
될 경우 남북관계 진전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
국간 공개회담으로는 1년 2개월 만에 재개되는 이 회담은 이산가족 문
제뿐만 아니라 상호관심사를 다양하게 다루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체제와 연관된 정치적 문제'라며 거부해온 이산가족 문제
를 다룰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 것은 비료가 시급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측은 올해 농사에 비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보내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관급 회담이
6월중에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도 북한이 비료를 빨리 받
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회담 개최 시기를, 북한은 비료
지원 시기를 앞당기려고 하는 입장이 적절히 절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해마다 100여만t의 비료가 부족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에
우리측이 약속한 지원 규모는 20여만t으로 알려졌다. 복합비료(수송비
포함 1t=32~34만원)와 유안비료(1t=16~17만원)를 섞어서 보낼 경우, 정부가
이미 한적을 통해 지원한 복합비료 5만t(162억원)을 합하면 730억∼
740억원 상당이다. 이같은 액수는 95년 이후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2945
억여원)의 연간 평균치와 비슷한 규모이다.

우리 정부는 이번 차관급 당국회담을 '포괄적 접근구상'의 시동을
거는 장으로 활용할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산가족문제해
결,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 교류협력 활성화 등 북측이 지난 2월 제의
한 '고위급 정치회담'의 의제도 모두 '포괄적 접근구상'에 담겨있다.
차관급 회담을 지속적으로 끌고가면서 이같은 의제들을 다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비공개 접촉에서 정부는 북측으로부터 이산가족 문제
해결과 관련한 가시적인 조치를 보장받지 않은 채 비료지원을 시작하
기로해 당국간 대화 재개를 위해 '상호주의'를 포기했다는 비판을 면
하기 어렵게 됐다.

일부에선, 북측이 '이산가족 몇명을 언제까지 어디
에서 만나게 하겠다'든가, 최소한 '몇명에 대해 생사확인을 언제까지
해주겠다'는 등을 합의해야 비료를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어야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 결과적으로 '비료는 인도적 문제이나, 이산가족은 정치적 문제'
라는 북측의 협상논리에 말려들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이와 함
께 북한이 비료만 받고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선 시간을 질질 끌 경우,
'비료지원 중단' 카드 외에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