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17대 대형 은행이 98회계연도(98년 4월∼99년 3월) 결산에서
한곳도 빠지지 않고 모두 적자를 냈다. 2차대전 이후 처음이다. 경영부
실과 경쟁력 약화에 시달려온 일본 금융이 '전은행 적자'(지방-군소은
행 제외)의 불명예까지 기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일본금융 패전기는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은행들은 기
대한다. 적자 결산은 과감한 군살 도려내기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이번
결산으로 금융재생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갖춰졌고, 남은 것은 도약 뿐
이라고 일본 금융계는 장담하고 있다.

실제로 적자결산의 주원인은 부실채권(돈을 꿔준뒤 상환받지 못하는
채권)을 대대적으로 상각한 때문이다. 16대 은행(17대 은행중 세부결산
내역을 아직 발표하지 않은 다이와은행 제외)이 떠안고 있는 부실채권
은 지난 3월말 현재 20조엔이었다. 은행들은 그 절반인 10조엔의 부실
채권을 회계장부에서 털어냈다.

영업이익금이나 내부유보, 정부에서 지원받은 공적자금(총 2조엔)등
을 갖고 부실채권을 까버리는 방식이었다. 16대 은행은 영업활동에서는
흑자였으며, 업무이익(총 3조8000억엔)도 그리 나쁜 실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은행들은 결산실적을 좋게 포장하기보다는 이익을 전액 부실
채권 상각에 쏟아붓는 방안을 선택했다.

그 결과 결산은 적자가 됐지만 부실채권 잔액은 절반 정도로 줄어들
게 됐다. 남은 부실채권은 약 10조엔 정도로, 총여신에서 차지하는 비
율도 3% 밑으로 내려갔다. 이 정도 부실채권 부담이라면 서방 선진국의
대형 흑자 은행들과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다. 금융재생위원
회는 "일본 금융의 부실채권 처리작업은 이제 완료됐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금융업계의 구조개편도 숨가쁘게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은행들도
과거 한 은행이 개인융자에서 외환까지 모든 업무를 두루 취급하는 '백
화점식 경영'이 주류였다. 하지만 최근들어 자신있는 어느 한 분야에
모든 자원을 투입, 특화하려는 '선택과 집중'의 경영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예컨대 다이이치강교-사쿠라은행 등은 외국계 기업에 대한 융자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아사히와 도카이은행은 대도시권 중심의 개인-중소
기업업무에 전문화할 계획이며 다이와-주오신탁은행은 해외영업에서 전
면 철수키로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금융계에도 '전문할인점 시대'가 시
작됐다고 비유한다.

합종연횡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도쿄미쓰비시가 멜론뱅크 그룹(미국)
과, 미쓰비시신탁은행은 프루덴셜보험(미국)과 손잡는 등 특히 투자신
탁 분야를 중심으로 한 외국세와의 제휴연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
다. 인원절감과 조직축소는 물론 기본이다. 은행원수는 80년대 버블(거
품경제) 시절에 비해 20% 이상 줄어들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각 은행별
로 1000명 단위의 대량 감원 계획을 추진중이다.

금융전문가들은 앞으로 일본의 은행들이 세 그룹으로 분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우선 지구적 규모로 영업하는 '초대형은행'. 도쿄 미쓰비시
은행등이 그 예이다. 두번째는 일정한 지역에 특화하는 '지역은행'. 오
사카 인근의 간사이 지역에 집중하겠다는 다이와은행이 후보이다. 그리
고 개인 상대의 소매금융이나 중소기업 융자업무 등에 특화하는 '전문
은행' 그룹도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구조조정은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태이다. 주일 한국
대사관 이철휘 재경관은 "일본 은행들이 90년대 들어 치열하게 추진해
온 구조조정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서 "과거처럼 세계적 경쟁
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첨단 금융공학이나
정보처리 기법 등에서 서방 은행들에 열세인 것은 일본금융의 여전한
불안재료이다. 서방선진국 대 일본의 세계 금융패권 경쟁은 지금부터
더 재미있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