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여름 나는 수녀들이 운영하는 프랑스 여자 기숙사에 머물고
있었다.

긴 여름 바캉스기간에는 기숙사가 거의 비어 있어, 단기 어학연
수생이나외국 교수님들이 묵고 가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수녀 한
분이 "한국 교수님 한 분이 잠시 머물다 가실 거예요"라고 알려주었
다. 기숙사에서 유일한 한국학생이었던 나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소
식이었다.

며칠 후 내 방 창을 통해 기숙사 정원에서 왁자지껄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서울 모 대학 연수생들이 자신들의 교수님이 묵고 있는
기숙사로 맥주를 두 박스 들고 찾아와 교수님과 함께 대낮에 정원에
서 술판을 벌인 것이었다. 소음은 꽤 오래 계속됐다. 몇몇 학생은
복도로 들어와 술주정을 하며울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댔다. 항상
정숙해야 할 기숙사에서, 그것도 수녀님들이 계시는 곳 바로 옆에서
그런 일을 벌이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 일이 거의 잊혀졌나 싶던 어느날, 기숙사 뜰에서 원장 수녀님
과 마주쳤다. 수녀님은 한국 여대생들이 술마시고 간 얘기를 꺼냈
다. 수녀님은 "대낮에 여대생들이 맥주를 박스로 가져다 놓고 마신
다는 게이해가 안간다", "더구나 빈 술병과 쓰레기를 정원 잔디 위
에 나뒹굴게 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화가 난 목
소리로 "한국인은 원래 그러냐"고 말했다. "이 기숙사에 너를 마지
막으로 한국인은 다시 받고 싶지않다"던 그 분 말씀은 지금도 내 가
슴 한 편에 씁쓸하게 남아있다.

( 김명원·24·프랑스유학생 )